2004-2005년 전미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위기의 주부들'과 '로스트'일 것이다.
도시 근교에 사는 주부들의 평화로운 행복 뒤에 숨겨진 가족간의 갈등, 불륜, 음모 등을 코믹하게 그린 '위기의 주부들'은 시리즈 프리미어 시청자수가 자그만치 2100만명을 넘으며 네트워크 사상 가장 높은 프리미어 시청자수를 획득, ABC를 11년 만에 톱의 자리에 올려놓은 프로그램이다. HBO나 쇼타임 같은 유료 채널도 아닌, 네트워크 그것도 ABC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방송계를 떠들썩하게 했으며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2005-2006년의 전미 새 시리즈들은 아니나 다를까 적든 많든 ABC의 이 두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많이 엿보인다. 이런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번에 소개할 쇼타임의 30분 코미디 시리즈 '위즈'이다. '위즈' 역시 서버비어에 사는 중산층 '위기의 주부들'을 그리고 있으나 위스테리아 레인(Wisteria Lane)의 '위기의 주부들'보다 덜 코믹하면서 더 위태롭고 절망적이다.
우선 캐스팅을 살펴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재능 있는 여배우, 메리 루이스 파커의 출연이다. 그녀의 영향력 있는 연기에 대해서는 NBC의 TV 시리즈 '웨스트 윙'에서의 에이미 가드너를 기억하는 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녀는 이 역으로 2002년 54회 에미상 드라마 부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바 있으며 작년 모든 TV 프로그램상을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HBO의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는 남편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고뇌하는 주부 역을 훌륭히 소화해내 61회 골든 글로브 TV부문 여우조연상과 56회 에미상 미니시리즈, TV영화부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번에는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도덕적 개념을 상실한 위선적인 위기의 주부에 도전한다. 메리 루이스 파커가 연기하는 낸시 바트윈은 캘리포니아 근교에 사는 두 아들의 엄마이다. 남편이 갑작스레 죽기 전에는 뭐하나 남부러울 것 없었던 그녀가 어느 날 남편이 조깅 중에 심장 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그녀 앞에 남겨진 것이라고는 부양해야 할 두 아들과 임대한 레이지로버, 그리고 몇 푼 되지 않는 생명보험금이 고작이다.
그럼 가계를 유지하고 두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 그녀가 찾은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마리화나를 파는 것이었다. 낮에는 아들 쉐인의 축구시합장에서 거래를 하고 밤에는 포커판을 찾아가 약을 팔며 자신의 회계사에게도 약을 판다. 즉 자신의 친구들, 이웃들과 위험한 거래를 하는 위기의 부인이다.
그럼, 그녀가 거래를 하는 이웃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글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잘 가꿔진 집에 레인지로버를 타며, 아버지는 4달러짜리 모닝 라떼를 마시고 어머니는 멋진 스포츠 웨어를 입고 조깅을 하는, 말끔하고 단정한 판에 박힌 이웃들이다.
이 중에서 그녀와 가장 절친한 친구이도 하지만 경쟁관계에 있는 이웃이기도 한 실리아 호지스는 근교 생활에 무료와 환멸을 느끼며 가족애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15살 장녀인 그웬이 남자친구인 사일러스(낸시의 아들)와 섹스를 하는 것을 잡기 위해 비디오 카메라를 숨긴 인형을 준비하질 않나(결국 실리아는 딸에게 당해 남편이 테니스 강사와 바람난 장면을 본다, 그리고 이어서 내뱉는 실리아의 말이 가관이다. 역시 지웠어야했어) 비만기가 보이는 둘째 딸, 이자벨에게는 초콜렛 대신 관장약을 몰래 바꿔치기 한다(이런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이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딸이 똥녀라고 놀림을 받게 되었다며 다그치는 딘에게 뚱녀보다는 똥녀가 낫잖아. 여기는 뚱녀는 대접 받지 못 하는 미국이야!를 외친다) 그리고 남편 딘이 테니스 강사와 바람 난 것을 알고는 남편이 잠든 사이 머리카락을 다 밀어 버리는 한편 동성과의 섹스를 시도하려는 그야말로 desperate housewife이다. 이런 절망적인 주부, 실리아 호지스를 엘리자베스 퍼킨스가 천연덕스런 연기로 낸시와는 또 다른 성격의 아슬아슬한 주부를 보여준다.
그리고 케빈 닐런이 분하는 더그 윌슨은 낸시의 회계사이자 시의회의원으로 낸시의 단골 고객 중의 한 사람이다. 하루 종일 약에 쩔어지내며 대낮에 누가 보거나 말거나 차 안에서 그것을 하는 인간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아들은 마리화나를 팔고 다닌다. 아버지는 주구장창 마리화나를 피우고 아들, 조쉬는 낸시에게서 마리화나를 사 아이한테도 마리화나를 파는 게이이다.
한편 이 시리즈에는 또 하나 눈에 띄는 가족이 등장하는데 바로 낸시에게 마리화나를 제공하는 흑인 제임스 패밀리다. 제임스 패밀리의 여가장인 헤일리아는 거래에 돈이 부족한 낸시에게 과감하게 레인지로버와 반지를 요구하는 등 비즈니스의 엄격함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낸시에게 일하는 요령을 가르치기도 한다. 비수를 꽂는 듯한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뒤끝은 없다. 아니 오히려 세상 물정 모르는 낸시를 사회선생인양 가르치는 듯 하다. 그리고 콘래드는 남몰래 옥수수빵 만드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는 자상함을 보이기도 하는 등 생기 있고 따뜻한 가족을 보여준다. 사실 이 위기의 백인 중산층 가정과 마약을 만들긴 하지만 화목한 흑인 가정의 대조적인 이 설정은 상당히 아슬아슬하며 눈에 띈다.
그리고 뒤늦게 가세, 에피소드 4부터 출연하는 저스틴 커크의 출연이 무엇보다도 반갑다. 사일러스와 쉐인의 삼촌인 앤디 역으로 분하는 저스틴 커크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메리 루이스 파커와 함께 공연, 역시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에이즈에 걸린 프라이어 역으로 에미상 미니시리즈, TV부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뒤늦게 '위즈'에 합류하게 된 그의 기사를 보니 '엔젤스 인 아메리카'의 메리 루이스 파커와의 재차 공연을 언급한 내용이 많았다. 그만큼 두 배우 다 '엘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보여준 연기가 인상적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여하튼 저스틴이 분하는 앤디는 낸시를 콘래드에게 소개해 준 장본인으로 어느 날 소식도 없이 여행에서 바트윈가로 들이닥친다. 형수한테 가당치도 않은 목 마사지기(^^)를 선물해 낸시를 당혹스럽게 하질 않나 대낮에 약을 하며 음난 채팅을 하질 않나 이쪽도 만만치 않게 위태로운 캐릭터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러면서도 형수와 아이들을 지키고자 한다.
이 시리즈는 젠지 코핸이 크리에이터 겸 각본, 총제작 지휘를 맡았다. 그녀는 'Tracey Takes On...'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또 '프렌즈', '섹스 앤 더 시티'와 '길모어 걸스'의 각본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프리미어를 연출한 "Saved!"의 브라이언 다넬리는 컨설팅 프로듀서 중의 한 명이기도 하며 앞으로 몇 개의 에피소드도 연출 할 예정이다. 그리고 "앨리 맥빌'의 로베르토 베나빕이 공동 총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마지막으로 이 시리즈의 오프닝 테마송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프닝 테마송은 맬비나 레이놀즈(Malvina Reynolds)의 'Little Boxes'로 맬비나 레이놀즈(1900-1978)는 미국의 포크송 가수로 사회성이 풍부한 노래로 유명하다. 물론 Little Boxes 역시 정치적 성향이 강한 노래로 유명한 곡이다.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샌프란시스코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호화별장생활을 누리는 부자들을 조롱하는 내용이다. 나중에 빅토르 하라가 피터 시거가 부른 'Little Boxes'를 듣고 영감을 받아 칠레 산티아고의 교외 바리오 알토의 부유층을 신랄하게 비난한 내용으로 새롭게 편곡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