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BC 드라마 <하얀 거탑>이 인기리에 종영됐다. 그 동안 한국 드라마라면 의례껏 있어왔던 로맨스를 과감히 배제하고, 진료 외적으로 일어나는 일, 예를 들면 권력을 둘러싼 암투라던가 의료 분쟁 등, 그 동안 그다지 다루어 진 적이 없는 소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간 <하얀 거탑>은 그 신선함과 완성도에 있어서 큰 호평을 받으며 일본 원작을 뛰어 넘었다는 찬사도 한 몸에 받았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한류 열풍의 주역인 드라마 <대장금>을 들 수도 있는데 정통 사극에서 사용되는 흔한 소재에서 탈피하여 음식과 한의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갔던 것이 드라마의 특색이자 주요 성공요인으로 작용했다.
지금 소개하는 <하우스>도 독특한 소재와 캐릭터 설정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드라마다. <하우스>는 본격 의학 드라마로써 괴팍한 성격의 의사 '그레고리 하우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인술을 펼치는 의사는 아니다. 그의 정신 세계엔 휴머니즘도 없는 것 같아 보인다. 하우스는 환자를 단지 병이 살고 있는 숙주로 볼 뿐이고 환자의 말은 믿지도 않는데다가 치료에 필요하다면 병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한다. 그의 괴팍함에 동료 의사들이 제지를 하지만 들은 척도 안하고 자기 고집만을 앞세우기만 한다. 실제 병원이라면 절대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의사들은 대체로 환자들의 말을 잘 듣고 잘 믿는 편이다. 만약 환자를 존중해주지 않는 의사가 있다면 아마 그는 엄청난 항의와 함께 머지않아 징계를 받게 될 게 뻔한 것이 현실이다.
의사 하우스가 앞 뒤 안 가리고 이렇게 득의 양양하게 자신의 논리를 펼 수 있는 까닭은 그가 가지고 있는 치밀함과 천재성에 있다. 그는 병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조수 '포어맨'을 시켜 환자의 집에 있는 쓰레기통까지도 뒤지게 한다. 이것은 마치 명탐정 홈즈의 철저한 현장 조사와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추리력을 연상케 하는데, 두 사람의 이름에서부터 성격이나 습성 등에서 나타나는 이들만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도 이 드라마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가 되겠다.
그를 단지 '괴팍하고 고집불통인 천재'라고 치부해 버릴 수 만은 없는 이유에는 병을 고치려는 남다른, 하우스만의 의지에 있다. 천재성에 기반한 그의 집념과 의지는 아무리 미궁에 빠진 환자라도 치료를 가능케 하는 기적과 감동을 시청자에게 선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는 드라마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진정한 휴머니티를 발견하고 그에게 호감의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다.
요즘 들어서 우리나라 드라마도 전문화 된 소재들을 많이 선보인다. 미국이나 일본 드라마의 영향이 크겠지만, 무엇보다 좀 더 입맛이 까다로워진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더 이상 눈물샘 만을 자극시키는 트랜디 드라마보다는 새로운 소재와 그것을 바라보는 유니크 한 시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하우스>는 < ER >이나 <그레이 아나토미>처럼 전문화된 의학 세계를 디테일 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그 속에 숨어있는 희로애락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착한 주인공 콤플렉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하우스이기 때문에, 시청자가 그에게 직접 다가서기보다는 멀리 돌아서 조금씩 친해지게 만드는 섬세한 장치도 만들어져 있다. 결국 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시청자들은 하우스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싸움을 못하는 맥가이버나 결벽증에 걸린 탐정 몽크 등, 뭔가 결함을 가진 주인공은 비록 망토를 펄럭이는 위대한 영웅이 되지는 않겠지만, 대신 사랑스러운 이웃집 아저씨는 되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하나 둘씩 부족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인간적인' 주인공에게 우리는 무한한 애정과 응원을 보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