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엄격한 청교도 사회와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의 대립

영어영문학부(야간) 0612060 김소명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는 17세기 중엽, 보스턴의 엄숙하고 엄격했던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헤스터(Hester)라는 한 여성과 딤스데일(Dimesdale)이라는 한 목사의 불륜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지 표면적인 소재로만 본다면 자칫 외설적이고 진부한 치정 관계를 다룬 작품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랜 세월 동안 19세기 미국 문학의 걸작으로 칭송받아 올 만큼 기타 삼류 작품과 확실히 구별되는 무언가 심오하고 독특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즉, 이 작품은 단순히 진부한 치정 관계를 그린 것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관심사인 개인과 사회와의 갈등, 이성과 감성의 갈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갈등 속에서 고통받는 인간 내면의 심리를 낭만주의 기법을 통해 매우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헤스터와 딤스데일은 당시 엄격한 청교도 사회에서 가장 죄악시되는 불륜을 저지른 대가로 사회 속에서 철저하게 고통받는 삶을 산다. 우선, 헤스터는 비록 남편의 행방이 묘연하나 유부녀인 몸으로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엄격한 청교도 윤리에 따라 혹독하게 처벌받는다. 그녀는 겨우 사형은 면했지만, 그 대신 간통(Adultery)이라는 죄의 상징으로써 누구나 볼 수 있게끔 A자 형태의 주홍색 글자를 평생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형벌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주변 사람들의 극심한 비난과 모욕, 수치 등을 평생 견뎌내야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사형보다 더 극한 형벌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주변 사람들의 냉대 외에도, 헤스터는 딤스데일과 자신의 딸인 펄(Pearl)의 존재로 말미암아 고통받는다. 헤스터에게 펄은 그 이름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얻게 된 유일한 보물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그와 동시에 간통이라는 자신의 죄를 주기적으로 일깨워 주는 고통스러운 존재이다. 따라서 이러한 펄의 존재는 헤스터가 A자의 의미로부터 달아날 수 없도록 하는 일종의 족쇄 역할을 한다. 한편, 헤스터는 A자의 의미를 바꾸고자 삯바느질을 통해 번 돈으로 꾸준히 선행을 베풀고 금욕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주변 사람들로부터 훗날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지만 청교도 교리가 철저하게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는 끝내 자신의 죄를 완전하게 씻을 수 없었다.

반면, 공공연하게 고통을 감내하는 헤스터와는 달리 딤스데일은 은밀하게 내면적인 고통을 받는다. 그는 모두에게 추앙받는 고결한 성직자임에도 죄악시되는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 때문에 늘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하여 그는 간통이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매일같이 자신의 몸을 채찍질하고 괴롭히지만, 그의 겉옷 속에 숨겨진 맨 가슴의 A자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그는 만천하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지만 헤스터처럼 고통을 당당하게 감내할 강인한 기질이 없어 늘 마음속으로만 끙끙 앓는다. 또한, 그는 죄를 지은 다음에도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는 순결한 성직자임을 행세해야 하는 자신의 위선적인 모습에 더욱더 환멸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한편, 헤스터의 전남편이자 복수의 화신, 사회의 규범을 따르는 이성적인 존재로 대변되는 칠링워스(Chillingworth)의 존재는 이러한 딤스데일의 죄악감을 더욱 부추긴다. 그는 예민하고 불안정한 딤스데일의 심리 상태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딤스데일을 괴롭히며 끝내 그를 파멸로 몰고 간다.

이처럼, 헤스터와 딤스데일은 엄격한 청교도 교리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불륜이라는 죄목으로 7년간 고통받다가 끝내 서로 간의 진실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헤스터와 딤스데일은 숲 속에서 새 총독의 취임 연설을 하는 날 배를 타고 멀리 떠나 어딘가에서 새로운 삶을 살자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 약속은 끝내 실현되지 않는다. 목사이기에 누구보다도 청교도적 신념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딤스데일은 끝내 도피하지도 못하고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헤스터, 펄과 함께 처형장 한가운데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조용히 헤스터 품에서 숨을 거둔다. 결국,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죄로부터의 해방감을 맛보긴 했지만, 한순간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는 이유만으로 엄격한 청교도 사회 속에서 7년간이나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려왔다. 한편, 헤스터는 딤스데일과의 도피가 수포로 돌아가자 펄과 함께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다. 그러다가 훗날 펄이 외국에서 결혼하자, 헤스터는 혼자서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오고, 죽을 때까지 가슴에 A자를 단 채, 여러 사람에게 조언자 역할을 하며 살다 마침내 딤스데일 옆에 묻힌다. 그러나 헤스터와 딤스데일이 함께 매장되지 못하고 약간 떨어진 곳에 묻혔다는 점에서 죽어서조차 서로의 교제를 허락하지 않는 청교도 교리의 냉혹함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헤스터와 딤스데일의 불륜이라는 소재를 통해 온갖 위선으로 개인에게 규칙과 형식을 강요하면서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을 억제하려 했던 지나치게 엄격한 청교도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비록 사랑의 형태는 불륜이었지만, 헤스터와 딤스데일의 사랑 그 자체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진실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인간은 항상 규칙이나 규범에 통제받는 이성적인 존재가 아닌 자연스러운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감성적인 존재임을 보여준다. 즉 다시 말해서, 인간이란 언제나 기계처럼 이성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때때로 충동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도 하며, 기쁨, 슬픔, 분노, 고통, 죄책감, 환멸, 연민 등의 다채롭고 풍부한 감성을 가진 지극히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출처 : 하서명작선 94 『주홍글씨』- 나다니엘 호손, 황종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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