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개념>

새롭게 정치,경제 및 사회의 중심이 된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중산계급은 과거의 귀족계급에 대응해 스스로의 계급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빅토리아 시대 중산계급의 이상적 인간상으로서의 ‘신사’개념이다. 신사라는 개념은 귀족계급의 자질에 중산계급의 덕목을 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노동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이나 재산이 있는 사람으로서 적당히 교육을 받고 세련된 교양과 예의범절을 갖췄으며 명예를 소중히 여기며 존경할 만한 도덕성과 인격을 지닌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오늘날 ‘영국 신사’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바로 이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대한 유산에 내재된 신사의 본질>

어립 핍이 신사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우리는 신사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봉건시대의 신사는 출신자체가 귀족이거나,재산을 상속받아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속내를 들여다보면 당시의 신사들은 평생 족보나 들여다보며 사교로 세월을 보내는 무능력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해비샴의 이복 동생과 허버트에게서 신사의 부정적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게다가 새롭게 등장한 근대사회의 신사는 돈을 벌기 위해 사기를 치고 권모술수를 쓰기까지 한다. 콤페이슨,드러믈 등이 바로 그러한 신사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작가 디킨스는 이런 신사는 결코 참다운 신사가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다. 신사가 되기 위해 사교계에서 방황하던 핍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시행착오를 모두 겪고 나서야 참다운 신사가 되는 길을 찾게 된다.

유산은 신사가 되는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했다. 핍이 진정한 신사로 거듭나는 계기는 프로비스에게서 ‘사랑’이라는 인간 본질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재판을 받는 프로비스를 지켜보며 핍은 신사의 껍데기를 벗고 참다운 신사로 다시 태어난다. 즉,막대한 유산을 포기하고 진실한 사랑을 깨달으면서 비로소 진정한 신사가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핍은 마음의 고향인 매형 조에게 돌아갔고, 십 여년 뒤 사업가로 성공한 핍이 새티스 하우스에서 우연히 에스텔라와 맞추쳤을 때, 핍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신사임에 틀림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신사가 되었던 것이다. 신사(gentleman)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gentle과 ’man을 의도적으로 서로 떨어뜨려 놓은 이 어법은, 곧 핍이 ‘신사’의 이상을 버리고 ‘고결한 인간’의 이상을 취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절묘한 함축으로 표현한다. 신사보다는 조와 같이 진실한 마음을 지니고 인간적 사랑을 실천하는 ‘고결한 인간(gentle man)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다움의 기준이라는 깨달음을 그 ’신사‘라는 단어의 해체를 통해 극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마음이 진정한 신사가 아닌 사람은 누구도 행동에 있어서 진정한 신사가 되지 못한다.”라는, 허버트의 아버지 매슈 포킷의 소박하면서도 진실한 말이 더욱 설득력있게 들려 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핍의 각성과 그에 대한 우리의 공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주제>

핍의 성장 이야기에서 신사와 인간성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의 주제다. 사실 ‘위대한 유산’이 주는 감동의 상당 부분은 에스텔라에 대한 핍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에스텔라에 대한 핍의 사랑 이야기는 사랑의 여러 가지 미묘한 특징과 본질을 구체적이면서도 실감나게 잘 형상화하고 있다.

핍이 자신을 경멸하는 아름다운 부잣집 소녀 에스텔라에게 느끼는 수치감과 연모의 감정은 사춘기 소년에게 싹트는 묘한 사랑의 감정과 열등감을 잘 예시하고 있으며,공주를 구하는 기사 같은 존재로 자신을 상상하면서 에스텔라에 대한 낭만적 이상화와 기대감에 빠지는 모습 또한 청년기 사랑이 보이는 낭만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특히 에스텔라의 냉정함 때문에 겪는 핍의 질투와 번민과 고뇌, 그리고 그럴수록 더욱 에스텔라에게 빠져드는 어쩔 수 없는 그의 감정 등은 비이성적이고 불가항력적이며 맹목적이기까지 한 사랑의 복잡라고 미묘한 심리를 사실적인 경험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해 준다.

사실 디킨스의 작품 가운데 ‘위대한 유산’만큼 사랑의 절실한 감정을 진지하고 구체적인 감동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핍의 사랑 이야기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하나 예로 든다면,에스텔라가 드러믈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안 핍이 그녀에게 간절한 충고를 하면서 변함없는 사랑의 고백을 하고 돌아서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사람에 따라서는 좀 연극적이거나 감상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서도 사랑의 고뇌와 좌절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또 그러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결코 무심하게 읽을 수 없는 감동적인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즉 폐허가 된 새티스하우스의 정원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두 사람이 서로의 고통과 성장을 공감하면서 달이 떠오르고 안개가 걷히는 가운데 손을 잡고 걸어 나가는 장면에서만큼은 그 시적인 아름다움과 상징적인 분위기가 자아내는 감동에 무감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위대한 유산(세계문학전집 민음사)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서 나타난 진정한 신사관-오원숙
위대한 유산 제대로 읽기,진정한 참다운 신사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계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