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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561 date : 2010-04-06 20:49:43
NAME :    한영숙
SUBJECT :    부활주일 설교
HOME :    없음

"부활의 생명"  고린도전서 15: 19-26  

  오늘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인간에게 절대 한계일 수밖에 없는 죽음이 극복되었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죽음의 형벌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이 저를 죽음에서 일으키시어 인간에게 참 생명을 가져다주는 구세주를 삼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예수께서 이루신 부활의 생명(영생, 참 생명, 죽음이 없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만 천하에 선포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심으로, 죽음에 종노릇하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뜻을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서 세상은 이미 종말에 이르렀고, 하나님의 심판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고, 믿지 않는 사람은 그로서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죽음밖에 남은 것이 없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부활 생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으로 여러분과 나도 부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죽음의 세력,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들, 죽음이 주는 불안과 공포, 허무와 절망을 이기고 죽음이 없는 부활의 생명, 참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이 부활의 생명을 맛보아 압니다. 이 체험을 통해서, 지금은 우리가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알지만, 장차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 같이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을 믿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의 부활 생명에 동참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 생명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죽음에 동참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죽음이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한 생명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생명은 우리 인간으로 말미암아 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온 것이기 때문에,누구든지 부활 생명을 얻기 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해야 합니다. 본문은 "예수에게 붙어 있다"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오늘 부활의 생명을 맛보기 원해서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순절을 보냈습니다. 그 사순절 기간 동안에 여러분은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삶을 살았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번 사순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순절을 지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를 온전히 내어주지 못하고, 머뭇거리면서, 사탄의 유혹에 시달려 왔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에 붙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썩을 것들로 살려 하고, 하늘나라의 영광이 아닌 세상의 욕되고 헛된 것들을 동경하고, 질그릇 조각 같이 약한 것들에 의지하려 했습니다. 영에 속한 것이 아닌 육에 속한 것, 위에 속한 것이 아닌 흙에 속한 것, 영원한 것이 아닌 잠시 뿐인 것, 항상 있을 것이 아닌 지나갈 것들에 사로잡혀서, 예수의 십자가에 온전히 나 자신을 못박지 못하고, 십자가 주변에서 서성거려 왔습니다. 
  그 때문에 죽음에 둘러싸여 조롱 당하며, 죽음의 세력에 휘어 잡혀서, 근심하고, 불안해하며 사순절을 보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전15:31) 고 고백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부활 생명에 동참하기를 원하면 예수의 십자가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매 순간 당하는 고난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십자가 앞에 자기를 내려놓고, 자기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신을 다는 결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죽은 예수의 시체를 붙들고 있는 것과 같고,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전해 준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그 말을 허탄하게 여겨 믿지 못했던 제자들과 같고,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면서도 주님을 보지 못하여 낙심하며 힘없이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제자들과 같습니다(누가복음의 기록).  
  우리의 모습이 그것으로 전부라면,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생명이 나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죄인이고, 우리에게는 믿음이 없고, 우리는 배신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예수의 죽음에 낙담하고 실망하여 엠마오로 돌아가던 제자들을 주님이 찾아 오셨고, 그들의 눈을 열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기는커녕 십자가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며 도망했던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시고 주님은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손의 못 자국과 허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시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를 살리실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소망으로 사는 예수의 사람들입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는 자의 삶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11). 
  부활 생명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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