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와 봄이
여여심/수필가
가을이는 우리 집에 온지 벌써 6년이 되었다.
거리의 천사로 떠도는 녀석을 내가 집으로 데려왔으니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지만 어림잡아 나이도 여섯 살쯤이겠지 생각하고 있다.
봄이는 올 봄에 이제 태어난지 한 달 된 녀석을 딸아이가 품에 안고 왔으니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있다.
어쨌든 가을이는 96년 가을에 우리 집에 왔고 봄이는 올 봄에 왔기 때문에 각자 그 계절에 맞게 이름을 지었다.
가을이는 털색갈도 가을을 연상할 수 있는 갈색이라 이름에 아주 걸맞다는 생각이고 봄이는 봄에 싹을 틔우는 여린 새싹 같은 어린 녀석이라 격에 맞는다고 생각해 보면 아주 자연스런 이름들을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두 녀석이 우리 집 식구가 된 사연은 각기 다르다.
가을이는 내가 서울로 볼일을 보러 갔다가 양재역에서 만났는데 거지꼴을 하고 거리를 방황하고 있어 내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냄세 나는 녀석을 품에 꼭 끌어안고 용인 내 집으로 데려왔다.
다행이 식구들이 모두 환영을 하여 주어 별 어려움 없이 식솔이 되었는데 문제는 식구들이 모두 밖에 나가는 사람들이라 늘 녀석이 혼자 집을 지키고 있어 그것이 안타까워 친구를 한명 데려와야겠다고 벼르다가 드디어 같은 동성인 봄이를 데려왔다.
사람이라도 어떤 형이 그렇게 자상하겠는가
가을이는 주먹만한 봄이를 감싸주었고 모든 것을 양보했다.
개도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입에 뭔가 물고 있을 때는 아무리 우리가 매를 들어도 놓지 않던 녀석인데 맛있는 갈비를 물고 있다가도 봄이가 덤벼들면 슬며시 놓고는 뒤로 물러서고 식구들 품에 안겨있다가도 봄이가 와서 밀쳐내면 못 이기는 척 하고 뒷전으로 물러섰다.
그뿐인가 가을이 녀석은 진공청소기만 들면 어디론가 달려가 숨곤 하는데 이제는 봄이까지 피신시키느라 내가 청소기를 들기만 하면 봄이가 눈에 뜨이지 않으면 봄이를 찾아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닌다.
한번은 봄이 발톱을 깎다가 잘못 건드려 발가락에서 피가 나자 따라다니면서 혀로 핣아주며 치료를 해주어 봄이 못지않게 아프던 내 마음까지 치료를 해주었다.
어찌 미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며칠 전에는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봄이를 별로 예뻐하지 않는 남편이 식탁 밑에서 얼쩡거린다고 지나가는 녀석을 발로 뻥 차버려 그 작은 것이 저만치 싱크대에 부딪치며 깽깽거리자 가을이가 잽싸게 달려가 사람이 하듯 두 다리로 봄이 등을 감싸듯 품어 주는 녀석의 눈이 얼마나 슬펐던지 나 또한 봄이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가을이는 자신을 야단 칠 때는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지만 봄이를 야단치면 몹시 짖으며 한사코 우리에게 항의를 한다.
비록 말은 하지 못하지만 둘은 그들만의 대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ㅡ 우리에겐 온 몸으로 말을 한다.
엄마, 봄이 야단치지 마세요. 엄마 외출하지 말고 집에 같이 놀아요. 엄마 맛있는 고기는 엄마만 먹지 말고 우리도 좀 주세요. 와 엄마 왔다 언니 왔다 아빠 왔다. 내 키 높이만큼 뛰어오르며 반기는 작은 짐승,
이 불쌍한 생명들이 사람과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가끔 가을이 하는 모양새를 보면서 남매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큰 아이인 아들이 여섯 살 되던 해 둘째인 딸아이를 낳아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그러고 보니 꼭 가을이와 봄이 터울하고 같다.
딸아이가 잘 먹지 않고 잔병치레를 많이 한 탓도 있었지만 자식은 내리 사랑이라 하듯이 모든 것은 어린 딸 아이 위주로 돌아갔고 남편은 더더욱 딸을 끔찍이 여겨 그야말로 겨울에 산딸기를 먹고 싶다고 하면 산 속을 헤매어서라도 구해다 줄 수 있을 정도로 무조건 딸을 두둔했다.
그러니 딸아이가 아무리 잘못해도 아들한테 ‘아직 어려서 그러니 네가 참아라 크면 알아듣게 야단치마’ 하는 말로 무마를 시켰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도 오빠만 야단을 쳐서 아들아이는 동생 때문에 야단도 맞고 맞지 않아도 좋을 매도 맞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때는 내가 투병생활을 할 때라 아이들을 전혀 보살펴 줄 수 없는 형편이었으니 동생을 돌봐야 하는 오빠의 짐은 더욱 무거웠을 것이다.
오빠가 학교에 가고 난 뒤 종일 누워지내는 엄마 옆에서 심심해하다가 오빠가 오는 기척이 나면 맨발로 뛰어나가 대문을 따주고는 그때부터 오빠 옆을 잠시도 떨어지지 않아 아들이 친구들하고 제대로 놀지도 못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고 딸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그날도 무엇 때문인지 남매가 다투고 있어 내가 매를 들어 먼저 오빠를 때리고 딸을 때리려고 하자 아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엄마, 저는요 매를 맞아봐서 참을 수 있지만 유리는 한번도 매를 맞아 본적이 없기 때문에 때리면 안되요. 제가 대신 맞을 테니 저를 때리세요.” 했다.
딸아이가 지금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마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는 단 한 번도 딸을 때려 본 적이 없다.
딸아이는 그것이 오빠 덕택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
요즘 가을 이와 봄이를 보면서 그때 남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제 머잖아 딸도 내 곁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정했던 남매의 사이도 많이 소원해질 것이다
각자 새로운 가족이 생길 것이고 그리고 그 가족에게 최선을 다 하다보면 떨어져 있는 부모 오빠 동생이라는 가족관계는 저만치 밀려나지 않겠는가.
그리고 우리 부부는 잎을 떨군 나무처럼 쓸쓸하게 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발밑에 나란히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는 가을이와 봄이는 예전의 남매처럼 다투며 양보하며 그리고 사랑하며 우리 옆에서 오랫동안 같이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어 한결 위안이 된다.
아들과 딸, 가을이와 봄이
물론 내가 낳은 아들과 딸은 사람이고 그리고 가을이와 봄이는 길에서 거둔 짐승이지만 내게는 똑 같은 생명으로 어린 남매를 키우듯이 사랑하고 보호해줄 것이다.
그것은 내 의무와 책임감이며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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