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의 밀어
박만엽
항상 너를 멀리서만 바라보다가
줄기에서 떨어져 낙엽이 되니
바람에 실려 너의 곁으로 오게 되었네.
지금은 바람의 힘으로 인연이 되어
너의 손을 잡고 의지할 곳이 있지만
해가 뜨면 나도 예외 없이
잔디밭을 맴돌다가 사라지게 될 거야.
너의 노랗게 물든 모습이
포근한 달빛과 어우러져
눈부시게 아름다워 너의 곁을
영영 떠나고 싶지 않구나.
해뜨기 전에 또 바람결에 실려 날아갈지
이번엔 네가 떨어져 우리의 인연이
여기서 끝날지 알 수가 없지만
다음 生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나
삶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해 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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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 길목에서
정기모
싸아하게 안기는 새벽바람 안고
밤별들 들락 이던 갈대숲으로 갔지요
가을, 하고 말해버리면
눈물 파랗게 흐를 것 같아 눈 감았지요
푸르게 흔들리다 지친 기다림 하나에도
노을빛 잔잔히 번지는 가을
새벽바람 빠져나간 자리에 누워
낙엽처럼 야윈 목소리로 노래하다
가을 풍경 잔잔히 번지는 그 숲에서
낙엽처럼 물들어도 서럽지 않겠지요
그리움 가득 서린 두 눈 감아도
낙엽, 그대들같이 서럽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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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가을입니다
채련
계절따라 세월따라
다시 찾아온 황금빛 가을
서서히 물드는 황금빛 나뭇잎 사이로
잊혀져간 얼굴들
마디마디 그리움으로 맻히고
차가워진 바람결에
훈훈한 가슴 그리워
몸서리치는 가을입니다
잠재웠던 정열
다시 끌어 오르는
달무리진 가을
밤벌레 울음소리에 혼줄 놓고
별똥별 떨어지는 밤이면
무의미했던 존재마저 의미로 부각되는
가을입니다
잡을수 없는 미지의 어딘가에
닿을수 없는 마음
전할수 없는 이야기들
저 홀로 쓰고 지우고 지새우는 밤
갈 길 잃어 서성이는 잎새 하나
마른 창가에 내려 앉으면
그를 버린 휘어진 나무마저 품에 안고
사랑하고픈 가을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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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날에
박숙인
가끔 불어오는 허전한 바람이지만
아직도 가슴을 태우는
그대의 빛나는 눈빛이 있으니
잃어버린 그 어떤 것이 있었다면
가만가만 그것들을 찾아가
우리가 물들일 가을이 왔으니
다시 한 생의 열정을 담아
마음의 꽃을 피우련다
산 모퉁이 지나는 바람과 햇살이
자신의 길인 양 머뭇거리지 않듯이
스스로 마음 기우는 것에
행복해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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