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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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414 date : 2016-01-04 10:11:14
NAME :    mkumc
SUBJECT :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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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신명기 8:1-10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본문은 끝없는 방황과 결핍의 장소인 광야를 지나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그 역사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역사 논쟁이 한창입니다. 역사 교과서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한국인에게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 70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남북 분단이 우리 민족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해석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신명기서는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그 고난의 역사를 해석합니다.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사냥도 목축도 불가능한 사막에서 오랜 세월을 고통스럽게 살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고비 고비를 겪게 하신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지, 하나님이 주신 법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시험하신 것이며, 가나안에 정착할 자격이 있는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백성들인지, 하나님께서 저들을 테스트 하셨고, 준비시키셨다고 말합니다. 

  광야는 인생의 행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풍족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결핍된 곳입니다. 먹을 것도 모자라고 마실 물도 모자란 곳입니다. 19세기의 조선이나 1990년대 초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가 모두 이스라엘 민족이 겪었던 광야 생활과 같은 것입니다. 
  광야는 좌절과 방황이 연속되는 곳입니다. 그 배고픔은 무엇으로도 채울 길이 없고, 그 갈증은 어디에서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19세기 조선 시대의 가난하고 비참했던 실상은 결국 나라가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으로 끝이 났고,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인해서 비로소 우리 민족은 배고픔을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국토분단이라는 현실 앞에서 국가 안보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도 한국인은 배부르게 사는 것 외에 우리 민족이 겪어온 고난의 역사가 주는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여 북한은 아주 분명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19세기 조선시대보다 더 비참한 “고난의 행군” 이라는 시기를 先軍 정치를 표방하며 지나왔고 무력적화통일을 위하여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한반도를 무력으로 적화통일 시키게 될 때에 북한이라는 나라가 이 땅에 존재하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표방하는 역사인식은 우리 민족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또한 한국인들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즉 “떡이 다이다” “돈이 전부다” “우리가 북한보다 잘 사는데 무엇이 걱정이냐” 는 생각 역시 옳지 않습니다. 그 생각으로 북한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떡으로만 살 수 없다”는 말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떡으로만 사는 것은 생각이 없는 미물에게도 해당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결핍을 물질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풍족하고 모자람이 없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려도, 공허와 결핍 때문에 끝없는 방황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산으로 가도, 들로 가도, 강으로 가도 바다로 가도, 친구를 찾아도 여인의 품을 찾아도,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 삽니다. 말이 인간의 영혼을 채우고, 말이 삶에 의미를 줍니다. 말로 채워진 사람은 한 조각의 빵과 한 모금의 물로도 충만한 삶을 경험합니다. 그는 누더기를 걸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두막에 살아도 불편을 모릅니다. 말이 그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남한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적화통일이라는 말을 전 국민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를 살리는 말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어떤 말이 준비되어 있는지 어떤 말에 귀를 기우려야 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전(북한을 포함) 국민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 말은 “자유” 라는 말입니다.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모든 한국인에게 심어주어야 할 한 마디 말은 ‘자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다” 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종의 멍에, 노예의 근성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이 되라고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자유는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남한이 북한 보다 위대한 것은 경제적인 풍요가 아니라 자유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남한이 북한에게 줄 수 있는 것 역시 “자유”여야 합니다.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통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이 가져올 또 다른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인간을 자유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게 될 때에 한국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한반도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광야 생활 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광야에 사는 비참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만나, 즉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늘의 양식을 주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난했던 한국인에게 경제 기적을 주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을 자유하게 하시려고 말씀이신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지 아니하는지, 말씀을 모든 것 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지 아니하는지, 말씀을 생명으로 여기는지 아닌지, 말씀대로 사는지 아니 사는지, 우리 인간을 시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으로 사는 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나안이란 무엇입니까? 가나안은 단순히 팔레스타인 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더 이상 방황도 결핍도 없는, 영원한 축복의 땅입니다. 가나안은 인간이 꿈꿔온 이상의 땅이며, 에덴동산과 같은, 슬픔도, 고난도 없는 영생의 땅입니다. 그곳에는 눈물이 없고, 불만이 없고, 불평도 없습니다. 그곳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곳이며, 평안과 안식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를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말씀에 의지하여 말씀을 먹고 사는 여러분과 내가 되기를 원합니다.    

1/3/16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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