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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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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723 date : 2016-06-05 07:2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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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도하심” 사도행전 8:1-8
교회가 처음 시작된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부활하신 예수의 증인들이 되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의 수는 날로 증가했고 새로운 직분 자들을 세워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확대해 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처음에 일곱 집사를 세웠는데 그들 중의 하나인 스데반 집사가 처음으로 순교를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짤막한 글 속에는 참혹하게 수난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와 박해를 피하여 흩어지는 성도들의 모습과 스데반 집사를 장례한 사람들의 슬픔과 교회를 박해하는 사울의 이야기가 보도되어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들뿐만 아니라 사도들과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모두 순교를 했습니다. 과연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떠한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끈질기게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흩어져 다른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돌에 맞아죽은 스데반 집사의 시신을 장사하고 돌아온 성도들 역시 슬픔으로 통곡하면서 예루살렘을 등지고 낯선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이런 와중에 특히 유대교에 열심이었던 사울이라는 청년은 집집마다 샅샅이 뒤져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감옥에 집어넣는 일을 했습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는 당시의 절박한 상황이 초대교회의 한 부분이려니 하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 자신이 그 상황에 있다면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을 것입니다. 박해를 피하여 고향을 등지고 떠나가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겠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토록 사랑하여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며 세운 교회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보며 정든 땅, 정든 이웃을 떠나서 아무런 보장도 없는 미래를 향하여 길을 떠난다는 것은 참혹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난다고 해서 유대인의 핍박을 면할 수 있다고 안심할 수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지독한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열렬한 율법주의자도 많았고 민족을 지키기 위해서 형성된 결사대도 있었고 십자가에서 죽은 자를 메시야라고 주장함으로서 유대민족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기독교인들을 죽이기 위해서 땅 끝까지 쫓아다니며 이들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청년 사울과 같은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난 것입니다. 이들은 편안히 숨어서 살기 위하여 피해 간 것은 아닙니다. 이들이 편하게 살기만을 원했다면 예수를 부인하고 그냥 그곳에서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 믿는 일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난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일신의 안락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더 중요했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의 박해가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들의 눈물과 고통을 통하여 더 큰 기쁨이 가는 곳마다 전해진 것입니다. 그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꿈이나 꾸었겠습니까?
사람은 궁지에 몰려야만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조금만 가능성이 있어도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때때로 우리 인생은 피할 수 없는 고난에 직면하게 되고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요 슬픔입니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고난은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는 출발점이 됩니다. 나는 요즈음 풍전등화와 같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서 슬픔과 절망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주민을 해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힘이 대한민국에게 없는 것 같아서 괴롭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데, 난세가 분명한 오늘의 대한민국에 영웅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영웅은커녕 한국을 비롯한 이곳 미국에까지 저 악한 북한정권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종횡무진하고 있고 그들의 계략에 말려드는 줄도 모르고 저들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는 젊은이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부와 권력을 얻으려는 부패하고 타락한 지도자들, 자기 하나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라는 대중만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이런 대한민국에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괴롭습니다. 이런 저에게 눈에 들어온 영웅들이 있습니다. 탈북자들입니다. 저들이 자유통일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저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입니다. 저들이 어떤 이유에서 탈북을 했든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들에게는 북한 정권을 무너뜨려야 할 목적과 의지가 있습니다. 저들은 자신의 생명과 자유를 바꾼 사람들입니다. 한국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하게 여겨온 그 자유가 저들에게는 생명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저들이야 말로 종북 세력과 대적할 수 있고 북한 주민의 해방을 위하여 생명을 바칠만한 의지가 있는 영웅들입니다. 이들이 자유통일의 구심점이 되고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봅니다.
저 무서운 가난과 독재정권의 폭압 때문에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에게 자유통일의 희망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전율을 느낍니다.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역사의 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절망에서 시작됩니다. 어디로 가야 할런지를 알지 못하면서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를 부활의 주가 되게 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견딜 수 없는 박해를 피해 흩어진 초대교회를 통하여 인류 역사를 바꿀 세계 교회의 초석이 되게 하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기독교를 말살시키려던 유대인의 박해가 없었다면 예수의 제자들은 유대교의 한 분파로 남고 말았을 것입니다. 유한한 존재인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역사의 오묘함을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피와 땀과 눈물의 의미를 우리는 모릅니다. 이 시대에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세상의 가치에서 볼 때에 우리는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초대교회 성도들의 하나님, 역사 속에 있어온 수많은 순교자들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의 하나님입니다. 저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성되게 살아가는 여러분과 내가 되기를 원합니다. 5/22/16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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