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자” 빌립보서 4:4-7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항상 기뻐하고 너그러우며 염려하지 말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라’ 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친 아버지와 같은 가까운(인격적인) 존재로 믿기 때문에 모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오늘은 지난 1년간의 은혜를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인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들이 낯선 땅에서 추운 겨울을 넘기고 씨를 뿌려 이 땅에서 첫 번 추수를 거두어들였을 때에 저들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저들은 풍족하게 잘 살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낯선 땅에 도착해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절반에 이를 만큼 저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렸으며 한해 농사로 거두어들인 농작물 역시 또 한해를 살아 넘기기에는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인디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추수한 곡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들이 풍요롭고 강대한 오늘의 미국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조상을 둔 오늘의 미국인들, 풍요 속에 살고 있는 오늘의 미국인들은 감사하고 있습니까? 이 나라에서 누리는 자유에 감사합니까? 탈북자들은 한국인들을 향해서 “당신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자유가 북한 인민들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아느냐?” 고 묻습니다. 그토록 소중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지금도 곳곳에서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과 위정자들에게 감사합니까? 여러분과 나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음에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직접 땀 흘려 이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닌데, 이 건물 안에서 편안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건물을 지은 저 옛날 스웨덴 이민자들과 오랜 세월 이 건물을 돌보아왔던 렉싱턴 교회의 성도들에게 감사합니까? 또 이곳까지 오는 길은 어떻습니까? 버스가 운행되고 지하철이 움직이고 자동차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않습니까? 누가 도로를 닦았고 누가 지하철을 놓았고 누가 자동차를 만들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과 바꾸면서 길을 닦고 지하철을 놓지 않았습니까?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이 거저 주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에 감사합니까?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어떠합니까? 길쌈도 하지 않았고 옷을 만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좋은 옷들을 입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한 겨울에도 온갖 종류의 과일과 식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가게를 볼 때, 당장 먹을 수 있은 음식을 준비해주는 식당에 들를 때 우리는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뿐이 아닙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과 얼굴을 보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통신기기가 있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안방까지 전해주는 미디어가 있으며 원하는 곳으로 언제든지 우리를 데려다 주는 비행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누리며 삽니다. 이 모든 것에 감사합니까? 우리를 위해서 수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합니까? 그 모두를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까?
아마 여러분 중에는 속으로 “그야 그렇지만, 그게 모두 다 돈이 있어야지. 돈 있는 부자들이나 감사할 일이지 가난한 사람들에게야 그림의 떡이 아니냐?” 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감사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 가난한 사람은 한 조각의 빵과 한 잔의 물, 숨 쉴 수 있는 공기와 한 조각 밝은 태양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금은보화를 가진 부자들보다 더 진실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할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것을 감사합니까? 가족이 있어서 괴로운 일도 있고 골치 아픈 일도 있고 속상하는 일도 있지만 역시 그들은 나의 기쁨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족이 없어서 고독한 사람도 감사해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에 더없이 높고 푸른 하늘과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나무들, 아침을 가득 채우는 안개,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가을비의 감촉, 땅위에 나뒹구는 낙엽들, 그들을 흩날리는 바람의 소리,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찬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햇살의 따스함, 등등... 이 모든 것들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볼 수 있고 열린 귀를 가지고 그것들 속에서 들려오는 창조주의 세미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청결한 마음은 고독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건강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병들었거나 약한 사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의 욕심이 부질없고 허무한 것인 줄 깨닫게 되고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기 때문에 삶의 순간을 영원의 것으로 실감할 수 있어서 매일 매 순간 생명 있음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젊은이는 그 젊음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물론 청년의 때가 가져다주는 혼란과 방황을 겪는 괴로움이 있지만 그것은 젊은이에게 주어져 있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젊은이는 그 헤아릴 수 없는 가능성이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노인이 된다는 것은 슬픔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늙어 가면서 자신의 한계를 몸으로 깨닫는 지혜를 얻습니다. 대자연의 한 부분으로 화해가는, 흙으로 돌아가는 자로서 흙의 한 부분처럼, 모든 것을 아무런 불평 없이 받아들이는 대지처럼, 그렇게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배울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이런 지혜가 온몸에서 베어나는 것은 노인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입니다. 그러니 노인의 삶에 감사가 넘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할 경우입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과 문제들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하나님께 아뢸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 상황 안에서 감사할 내용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11/20/16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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