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판단하는가?” 고린도전서 4:1-5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당당함과 자신만만한 태도, 즉 그의 자유와 용기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밝혀주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라는 걸림돌과 같은 말을 전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아부하지 않았습니다. 그 용기와 자유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바울 자신의 말로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이며, 자기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된 것은 자신의 뜻이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신 뜻이 무엇인지를 그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비밀, 즉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인간의 눈으로 보면 비참한 실패자일 뿐인 예수의 십자가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이 은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증인이 되라고 자기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라는 확신이 바울에게는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이 바울로 하여금 사람의 판단을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게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대접을 받는 일이 하찮은 일일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자기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단언합니다. 바울은 사람에게서 칭찬을 받거나 비난을 받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바울도 사람이니까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비난을 받으면 신경이 쓰였겠지요.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신의 일을 그르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사람들이 듣기에 거북하고 거리끼는 말이라고 해서 십자가 없는 예수를 전하려 한다든가, 예수 대신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어떤 사상이나 인간의 욕심을 교회의 기초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일평생 흔들림 없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자신의 길을 달려 갈 수 있도록 한 것은 “하나님만이 나를 판단하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만이 자기를 판단하신다는 믿음이 바울을 승리자로 만들었습니다. 더욱이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판단은 형벌과 같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가슴 벅찬 기쁨을 주는 상이었습니다. 바울은 언젠가 다가올 그 날에, 주님을 만날 그 날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그날에 하나님께서 ‘잘 했다’고 칭찬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하나님을 자신의 잘못을 밝혀내어 꼬투리를 잡고 트집을 잡아서 벌을 주려하는 가혹한 분이라고 여겼다면 바울은 결코 당당할 수도 없었을 것이며 전도자로서의 용기도 자유로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늘 노심초사하고 전전긍긍하며 죄의식에 시달리고 회환에 잠기며 불안해했을 것입니다. 한국 불교가 낳은 위대한 스승 성철 스님은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이 쌓아놓은 죄업을 괴로워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이는 평생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하여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수도생활에 정진하였던 위대한 인간도 절대자를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일생 예수를 믿으며 교회를 위하여 살았다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기쁨보다는 두려움으로 여기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늘 자신의 속마음이 죄책감에 시달리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피곤한 교회생활을 영위하며 한 평생을 살아가는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지녀야할 자유나 용기가 없다는 말입니다. 특히 유교와 불교, 무속 신앙에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에 목말라 있고, 사람들이 내세우는 윤리도덕의 잣대로 자신과 이웃을 판단하는 일에 익숙해서 주눅이 들고 위선에 사로잡힌다는 말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조차 사람의 판단에 좌지우지 되고 있으며(가짜 박사 학위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목사라는 사실),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교회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유난히 사람들의 판단에 휘둘린다는 증거는 유행에 민감하다든가, 사기꾼들에게 잘 속는다든가, 언론의 선동에 쉽게 놀아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되는 한국 사회의 경향 때문에 훌륭한 인재들이 재야에 묻혀서 빛을 못보고 사라져버립니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신 분입니다.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행함이나 업적 때문이 아니라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실수나 잘못을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그 실수나 잘못을 통해서조차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주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신앙 고백으로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판단에 연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판단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을 수 있는 용감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의 판단이나 자신의 판단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만해지거나 나태해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판단하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결코 속일 수 없는 분, 그의 낯을 피하여 그 어느 곳에도 숨을 수 없는 분, 나의 속과 겉을 아시고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아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자신과 세상을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2/1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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