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말” 신명기 8:1-3 1/7/18 한영숙 목사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장의 말씀은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출 애급 한 후에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까지 광야생활을 해온 역사의 의미를 해석한 내용입니다. 가나안이란 무엇입니까? 가나안은 단순히 팔레스타인 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더 이상 노예의 삶이 주는 방황이나 결핍이 없는 자유인의 땅입니다. 가나안은 인간이 꿈꾸는 이상의 땅이며, 에덴동산과 같은 슬픔도 고난도 없는 안식의 땅을 의미합니다. 그곳에는 눈물이 없고 불만이나 불평도 없습니다. 그곳에는 기쁨과 감사가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신명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이스라엘 민족이 겪은 40년간의 광야 생활의 의미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그 고난의 역사를 해석합니다.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사냥도 목축도 불가능한 사막에서 오랜 세월을 고통스럽게 살도록 하시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셔서 굶어죽지 않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려는 뜻이었다는 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게 하신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지, 하나님이 주신 법을 지키는지, 가나안에 정착할 자격이 있는지, 자유인으로 살 자격이 있는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하나님께서 저들을 테스트 하셨고 준비시키셨다는 말입니다.
광야는 인생의 행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풍족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결핍된 곳입니다. 먹을 것도 모자라고 마실 물도 모자란 곳입니다. 광야는 좌절과 방황이 연속되는 곳입니다. 그 배고픔은 무엇으로도 채울 길이 없고, 그 갈증은 어디에서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겪어온 광야의 생활은 참으로 험난하고도 긴 세월입니다. 유사 이래로 2-3년에 한 번씩 전쟁을 겪으며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가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더욱이 19세기의 조선을 끝으로 결국 나라가 망하고 이웃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일제시대 36년을 지나는 동안 우리 민족에게 독립국가 수립은 불가능해 보였고 우리 민족은 영원히 소멸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기적처럼 해방이 주어졌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 뿐 우리는 다시 분열되어 한 반도에는 두 개의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해방 후 70년 동안 북한은 19세기 조선시대보다 더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적화통일을 하기위하여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해왔습니다. 이들은 남한을 적화통일 시킴으로서 공산독재왕조를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을 지닌 한반도의 주인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북한의 야욕이 오늘의 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건국은 우리 민족에게 배고픔을 면할 수 있게 해주었고 한국인을 자유를 지닌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지도자들은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자유민주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공산독재자들의 노예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현실 앞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은 배부르게 먹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추구하는 길을 따라가면 우리 민족은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 길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한국인들이 막연하게 절대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말, 즉 “떡이면 다이다” “돈이 전부다” “우리가 북한보다 잘 사는데 무엇이 걱정이냐” 는 말로는 공산독재자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떡이 제일이다” 는 말로는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는 말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떡으로만 사는 것은 생각이 없는 미물에게도 해당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이 느끼는 결핍을 물질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풍족하고 모자람이 없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려도 인간은 끝없는 공허와 결핍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방황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말로 삽니다. 인간을 만드는 것은 말입니다. 인간은 곧 말입니다. 말이 인간의 영혼을 채우고 말이 인생에 의미를 줍니다. 자신을 채우는 말을 지닌 사람은 한 조각의 빵과 한 모금의 물로도 삶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는 누더기를 걸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두막에 살아도 불만이 없습니다. 말이 그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살리는 말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어떤 말이 준비되어 있는지 어떤 말에 귀를 기우려야 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북한 주민을 포함한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하고 따라가도록 해야 할 말이 어떤 것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 말은 “자유” 라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에게 심어주어야 할 한 마디 말은 “자유”입니다.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서 이룬 것은 자유였습니다. 저들이 가나안에서 얻은 생활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이나 광야생활보다 더 편하거나 윤택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은 가나안에서 자유인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유는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유혹에 넘어가 죄의 노예가 되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죄와 죽음의 노예가 되어있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신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종의 멍에, 노예의 근성(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속성)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자유인이 되라고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복음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남한이 북한 보다 위대한 것은 경제적인 풍요 때문이 아니라 자유 때문입니다. 남한이 북한에게 줄 것은 “자유”입니다.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통일도 해야 합니다. 통일이 가져올 어떤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인간을 자유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한반도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 때에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이 될 것입니다. 오랜 세월 가난한 노예처럼 살아온 한국인에게 경제적인 풍요를 경험하게 하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말씀, 즉 자유라는 말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지 하나님은 우리를 테스트 하고 계십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만나를 주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 자유를 지키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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