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식” 고린도전서 9:16-18 2/4/18 한영숙 목사
지난 주간에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에는 미국의 건국정신인 청교도 정신이 깊이 배어있습니다. 그것은 소명의식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의 맡은 바 사명에 투철한 평범한 시민들을 모범적인 미국인으로 소개했습니다. 더 많은 대가를 받으려고 길거리로 몰려나와 투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시민들을 영웅이라고 불렀습니다. 자기 가족을 돌보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주어진 일터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시민들, 미국시민을 위해 도처에서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휴일도 없이 복무하는 사람들을 영웅이라 부르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이들이 미국의 영웅이고 이들이 미국인을 지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상은 국가나 사회에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개인주의적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어떤 대통령은 흑인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서,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서, 혹은 이민자의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폭력적인 데모대를 폭도가 아니라 정당한 권리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옹호하기도 했고 이들을 진압하는 경찰들이 과잉 진압을 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소명의식을 가진 개인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는 일이 국가의 임무라는 통치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건국정신인 청교도 정신에 투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교도 정신을 되찾으려 한다는 의미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그의 공약은 헛소리가 아닐 것 같습니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청교도 정신입니다. 그 중에서도 소명 의식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부여받은 소명이 있다는 믿음입니다. 인종이나 빈부, 혹은 능력의 차이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에 보냄을 받은 소중한 피조물이라고 하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청교도들에게 있었고, 이 믿음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시조인 미국의 건국입니다. 청교도들이 가졌던 소명 의식은 성경에 기초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 소명의식을 아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이 말보다 한 인간의 “소명 의식” 을 더 잘 묘사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그의 소명의식 때문에 바울은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고 정처가 없이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면서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은 곧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라고 하는 믿음으로서의 소명 의식은 교회 안에서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는 “소명” 이란 교회에 관계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교인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교회 비즈니스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는 잘못 된 것입니다. 바울의 소명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교인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없는 곳을 찾아다니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만약 바울이 지금 한국에 살고 있다면 한 집 건너 하나씩 교회가 있는데 또 비슷한 교회를 세우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소명 의식을 이렇게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청교도들은 소명이란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며 전도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소명 의식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야 할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믿음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자의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 내가 태어났고 존재해왔고 또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믿음에서 자유가 싹트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라고 하는 소명의식이 생겨납니다. 내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에서 신앙의 용기도 자라나게 됩니다.
현재 동계 올림픽을 주최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에서 소명 의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오늘의 자신, 즉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정부는 엄연히 다른 두 개의 나라가 한 반도에 존재하고 있는 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두 개의 나라가 전혀 다른 사상과 체제를 가지고 맞서 싸우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마치 하나의 나라가 존재하는 것처럼 처신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허구이고 속임수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하고 있는 이러한 처신을 용인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한국인들은 올림픽이 대한민국보다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정도의 행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존재 자체를 말살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을 이 땅에 세워주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행위이며 대한민국에게 주어진 소명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작은 나라에게는 주어진 소명이 없습니까? 핵무기가 없는 나라는 존재하지 말아야 합니까? 작고 핵도 없는 대한민국은 큰 나라 중국의 변방국가가 되어야 합니까? 가난한 사람에게는 소명이 없습니까? 머리가 나쁜 사람에게는 존재 이유가 없습니까? 권력이 없거나 힘이 없는 사람은 무시당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며 하나님이 자기 아들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내가 “포레스트 검프” 라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와 내 나라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실현하려는 것이 소명 의식입니다. 천만 명에 이르는 기독교인을 가진 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소명”이라는 말을 교회 비즈니스를 위해서만 이용한 결과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명 의식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자기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믿음입니다. 여러분과 나,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 뜻에 충성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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