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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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788 date : 2010-05-03 10:17:19
NAME :    한영숙
SUBJECT :    부활하신 예수의 증인들
HOME :    없음

"부활하신 예수의 증인들" (사도행전 5: 27-32)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이 말씀은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입니다. 케리그마는 설교의 원형, 메시지의 핵심, 복음의 핵심, 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유대교의 지도자들 앞에서 케리그마를 전하는 장면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한 밤중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옥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다음날 사도들은 다시 예루살렘 거리에 나타나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이들을 다시 잡아 의회로 끌고 가서 심문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대제사장은 저들에게 '왜 하지 말라고 한 설교를 했느냐?' 고 추궁했습니다. '예수를 전하지 말라고 했는데, 너희가 예수를 전하는 것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려는 목적이 아니냐?' 고 다그쳤습니다. 

  내가 본문을 읽으면서 참으로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대제사장이, 옥에 갇혔던 사도들이 어떻게 해서 다시 거리에 나와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질문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나 하나님의 활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오직 저들의 관심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의식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들이 속해 있는 종교집단이 가지고 있는 세력을 지키는 것입니다. 종교 집단의 세력은 항상 위협을 받기 마련입니다. 세속의 정치나 경제, 문화 등의 외부 세력에 의해서 위협을 받습니다. 종교집단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되었을 때에 종교 집단은 무력해지고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세를 하지만 실제는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고, 하나님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종교인들은 자기를 따르는 무리가 있고, 재물과 권력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행세합니다. 이런 종교인들이야말로 하나님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하나님을 망령되게 하는 악인들입니다.   
  
  이러한 종교인의 모습을 띈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도들의 모습은 대조적입니다. 사도들은 사람들의 인정이나 인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도들은 자신의 생명이 위협을 받는 순간에도 하나님만을 생각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고 베드로는 대제사장에게 대답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사명감은 누구에게 배워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누가 가르쳤거나, 주입시켰거나, 세뇌시켜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은 예수의 증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의 제자들과는 전혀 다른 제자들의 모습을 만납니다. 이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겁에 질려서 도망쳤던 비겁한 제자들이 아닙니다. 저들은 이제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들로 변해 있습니다.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변하게 했습니까? 저들을 변하게 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한 믿음입니다. 저들 속에 임하신 성령이 저들로 하여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용감하게 만들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 성령이 임하시는 체험은 모두 같은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삼위일체 교리는 자연스럽게 설명됩니다.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전한 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셔서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 복음은 세상의 가치관에서 볼 때에 결코 유쾌한 말이 아닙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이며, 세상의 가치를 부정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거리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항상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모든 말을 거부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열심히 성실하게 노력해서, 돈을 벌고, 출세하고, 권력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고, 이름을 날리고, 성공을 하면, 그것이 영생을 얻는 것이고, 그것이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세상의 모든 말을 거부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에서 볼 때에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실패요 저주받음일 뿐입니다. 그 십자가를 구원의 길이라고 하는 말은 세상을 뒤엎는 말이요, 세상을 심판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셔서 구세주가 되게 하셨다는 말은 인간의 능력과 지혜, 자랑을 허무한 것으로 돌리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무엇을 가지고도 죽음에서 부활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을 전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은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에게 자기를 맡기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현재 처한 상황이 죽음이며,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인 줄 깨닫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자기를 맡기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은 지금까지 자랑으로 알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하여 발버둥치며 추구해온 모든 것, 돈, 명예, 권세, 심지어 가족조차, 그 어느 것도 영생이 아닌 허무한 것들이며, 죽음의 그림자일 뿐이며, 그 것들을 탐하여 온 자신의 삶이 죄 뿐인 줄 깨달아서,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떨쳐 버릴 수 없는 죄의 짐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를 결단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주어집니다.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는 용기,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용기, 세상이 주는 인기나 명예, 부귀 영화를 초개처럼 여길 수 있는 용기,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용기가 주어집니다. 이 용기는 인간의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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