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일" (누가복음 19:29-40)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하소서" 예수 당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이들은 해마다 유월절을 맞이하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호산나(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치며, 예루살렘 성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압제와 핍박 속에 살아온 이스라엘이 의지할 곳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부르짖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으로 믿고 기다렸던 이스라엘 민족은 해마다 유월절이면 어김없이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찬송을 부르며 예루살렘 성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 때를 기하여 많은 사람들은 메시아를 자처하며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싸우라고 무리를 선동하여 소요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메시아 운동가들은 반드시 예루살렘 성을 찾았고, 그 때가 주로 유월절이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해방의 축제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해마다 유월절이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유월절에 예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고, 곧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던 장면을 묘사하면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메시아 운동가들의 그것과는 달랐음을 보도합니다. 백성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하여, 로마의 통치에 저항할만한 세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던 메시아 운동가들은 화려하게 장식한 말을 타고 건장한 수행원을 대거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진군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몇 안 되는 제자들과 함께, 제자들의 겉옷으로 장식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예수의 모습은 세상을 지배하는 정치가들이나 메시아 운동가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얻게 된 이야기도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고, 권력이나 무력으로 빼앗을 것도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 가까이 오셨을 때에 제자들을 마을로 들여보냅니다. 제자들에게 '오른 쪽 마을로 들어가면 나귀 새끼가 메어 있는 것을 보게 될 테니, 그 것을 끌고 오라. 만약 누가 묻거든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고 말씀하셨고, 말씀대로 나귀 새끼를 구했습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적 존재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사람은 한 치 앞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본 적도 없고, 계획한 적도 없는 곳에 나귀가 메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으며, 나귀를 풀어 오려는 순간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어떤 말을 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매순간 순간에 닥치는 일을 미리 알 수가 없기에 허둥대고, 실수하고, 후회합니다. 그 순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 순간에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그 순간에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소위 용하다는 점쟁이나 무당도 매순간의 의미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예수는 이미 인간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같은 분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이 기다려왔던 구세주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 왕으로서, 인류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물을 다스리시고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를 향하여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는 함성은 예수를 향한 찬양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외에는 그 곳에 있던 그 누구도 호산나 찬양을 받을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인간을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이 하는 일은 늘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정해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인간이 선택하는 일은 선한 일을 한다고 한 일이 세월이 지나면 악한 일이 될 수도 있으며,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의미를 지닌 것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도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인간이 하는 일은 모두 시간과 공간 안에서 존재하는 한계 된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고, 영원히 소유하거나 집착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인간이 하는 일은 모두 상대적이고 한시적인 의미를 가질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매일 매순간 무엇인가를 하며 삽니다. 때로는 아주 잘한 일이라고 좋아하고, 아주 귀한 일이라고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 일이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을 만족시키는 일일 수도 있고, 권력이나 명예를 얻는 것과 같이 인간의 욕망을 성취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 매일 매 순간 고군분투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의 일이 어떤 것이든지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결과도 그렇고, 과정도 그렇고, 선택도 그러합니다. 모든 것이 그 순간의 것일 뿐입니다. 모두가 바람을 잡는 것과 같고, 아침 안개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하는 일 중에 한가지 확실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고(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입니다. 예수를 향하여 호산나를 외치지 못하게 하라고 명하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에게, "만약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호소,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인간이 하는 일 중에 가장 확실한 일입니다. 잠시 뿐인 인간에게 영원을 깃들이게 하는 확실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영원을 맛보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3/2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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