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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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874 date : 2010-06-27 10:37:59
NAME :    한영숙
SUBJECT :    우리가 달음질하는 것
HOME :    없음

"우리가 달음질하는 것" (갈라디아서 2: 1-14)  
  사도 바울은 자기가 달음질하는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기를 원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진리를 위해서 싸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목숨을 걸고 복음의 진리를 지키려는 바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기독교회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에서 교회의 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심지어 교회의 주춧돌인 베드로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무얼 믿고 저러나 할 정도로 무모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을 사수하기 위해서 언제든지 돌을 들어 칠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까지 유대인들이 무서워 위선적인 행동을 했는데, 예루살렘에 지지자도, 자기가 세운 교회도 없었던 바울이 이토록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은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의 만용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의 진리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여긴 것은 교회 안에 들어온 유대교 주의였습니다.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율법을 지켜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신학)이었습니다. 
  기독교가 유대인들에 의해서, 유대인들에게 전파되어, 유대인들로 형성되었던 초대교회 안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마치 한국인들에 의해서, 한국인들에게 전파되는 한국 교회가 무속신앙에 물드는 것이 당연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신학적 변질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나타나는 현상에 대하여 적당히 눈감고 넘어갈 수도 있을 터인데, 타협을 하지 못하는 바울이 문제라고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한 바울을 두고 속이 좁다고 할 수도 있고, 융통성이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속이 좁아서도 아니고 융통성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바울은 그와 같은 현상을 용납하는 것 자체가 복음의 진리를 훼손하는 일이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인식했습니다.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죽음의 세력에서 자유롭게 되고,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헛된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바울은 믿었습니다. 이는 곧 그가 달음질해온 것이나 달음질하는 것이 모두 헛수고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헛되고 그의 부활도 헛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교회의 지도자들, 즉 유명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자기의 신학을 전개했고, 유명한 사람들을 신학적으로 공격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바울의 행위는 스스로를 고립되게 만들고,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달음질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교회생활을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교회의 목적이, 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속신앙에 물든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교회(신앙인)의 목적은 한 마디로 "예수 믿어서 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된다"는 말은 눈에 보이는 것들, 즉 본능적이고 물질적인 것의 풍요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교회의 모습이나, 교인들의 삶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교인 수, 헌금 액수, 예배당을 비롯한 교회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목회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고 교인들의 가치를 저울질합니다.    
  이처럼 오늘날 한국 교회가 본능적이고 물질적인 풍요를 얻는 것이 목적이 되어 있는 현실은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사도 바울이 했던 것과 같은 진리를 위한 싸움을 싸우지 않았고, 또 지금도 싸우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가 되어 있는 현상은 한국교회가 세상과 타협하다못해 세상에 질식당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육신이든, 정신이든, 영혼이든, 그것이 살아 있으려면 투쟁해야 합니다. 싸움이 없는 상태는 죽은 것입니다. 참 된 그리스도인(교회)이 되기 위한 내적 싸움이 없는 그리스도인(교회)은 이미 그리스도인(교회)이 아닙니다. 
  교회는 죽은 자가 살아 나는 진리를 선포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자랑하는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심판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생명,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세상이 줄 수 없는 부활의 생명을 전하는 곳입니다.  
  교회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달음질해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 생명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생명이 무엇인지? 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등,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교회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관심은 삶입니다. 목회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삶입니다. 목회자나 교인들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삶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고, 삶이 문제가 되고, 삶이 논의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삶을 문제삼을 때에는 사람 수가 많고 적음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을 진지하게 대하면 우리의 삶이 항상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교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와 타협하는 것이 교회의 생명에 대한 위협임을 간파하고, 목숨을 걸고 복음의 진리를 지켰습니다. 
  삶이 관심의 대상이 될 때에 우리는 맥추절을 추수감사절 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한 겨울을 날 수 있을 만큼 풍성한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맥추절은 추운 겨울을 지나고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얻는 보리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맥추절의 추수로 인류는 생명을 이어왔습니다. 절박한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지키려는 사도 바울의 목숨을 건 노력도 보리 추수와 같은 추수가 없었다면 허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시절에 하나 둘 건져 올린 이방인 교회들이 없었다면 바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6/20/10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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