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라” 요한복음 4: 5-26
요즘 우리는 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실감나게 하는 사건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구제역에 걸린 소들을 매장한 일 때문에 물이 오염 된다고 걱정을 하고, 일본에서는 지진해일의 피해를 입은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능 때문에 물이 오염 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구제역에 의한 재난과 일본의 원전 사고에 의한 재난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특성에 따라, 제각기 다른 양태를 띠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극히 한국인다운 재난이고, 일본인다운 재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모두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의 경우, 한없이 욕심을 부리면서도 매사에 책임을 질 줄 모르는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 지를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방대하게 축산업을 벌여놓았고,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에 정부를 불신하는 농민들의 반발이 두려워서 매몰하는 소 값을 배상해주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현재의 화를 불러왔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고, 매사에 철저하게 책임을 지려하고, 정부를 신뢰하고 따르는 일본인들의 습성이 지진해일로 피해를 입은 원전을 즉각 페기하지 않고, 보수하여 다시 사용하려고 애쓴 결과 지금과 같은 심각한 방사능 유출 사태를 불러왔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최근에 한국과 일본에서 일어난 재난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인간은 잘하는 일이라고 믿고 최선을 다하지만 인간이 건져 올릴 수 있는 것은 결국 죽음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동경에는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물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가게에는 물이 없다고 아우성을 치고, 일본에서 생산되는 물은 믿을 수 없으니 한국에서 생산된 물을 찾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더 좋은 물, 더 좋은 음식을 찾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방사능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본능입니다. 인간이 깨끗한 물을 찾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찾는 것은 결국 영원한 생명을 찾는 것입니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인간은 살기를 원합니다. 이는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살기를 원하지만 인간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물이 없습니다. 아무리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마셔도 결국은 모두 죽게 되어 있습니다. 찰나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둘러 싸여 있는 인간 존재의 특징은 불안입니다. 재난에 직면한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불안을 의식하게 됩니다. 재난이 인간을 불안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본래 불안한 상태에 있어왔는데, 재난에서 그것을 깨닫게 한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까지 인간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수가 성의 우물가에서 예수를 만난 여인도 물을 찾았습니다. 이 여인은 다섯 번이나 결혼을 했었지만 남편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그녀와 살고 있던 남자도 남편은 아니었습니다. 다섯 번이나 결혼을 했다는 사실은 이 여인이 살려고 애쓴 처절한 흔적입니다. 이 여인의 삶은 불안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삶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운 남자를 찾아 나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얻은 것은 불안하고 혼미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여인이 붙잡고 있는 삶은 삶이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이러한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영생의 물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인은 처음에 예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시는 물이 자기가 알고 있는 물인 줄로 착각합니다. 이 여인의 착각은 보편적인 형상입니다. 모든 인간은 이 여인처럼 하나님의 선물을 자연적인 생활의 편리를 위한 수단으로 오해합니다. 자연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의 욕심을 만족시켜 주기 위한 도구로밖에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네 남편을 데려오라”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한 마디 말씀은 이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그 자신이 어떤 자인지 발견하게 합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 여인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예수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이 자기를 깨닫는 일과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자기가 죽음에 처한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여인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여인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는지, 그리하여 하나님이 보내주실 구세주를 만나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그 길을 알기 원하여 예수께 질문을 합니다. 여인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너에게 말하는 내가 그라” 고 대답하십니다. 내가 곧 네가 찾는 메시야, 즉 “하나님이 너를 위해 보내신 구세주” 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곧 “나를 믿으라.” 는 말입니다. “나를 믿으면 네가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곧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욕심에 사로잡혀서 밤낮 없이 노심초사하는 한국인들과,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 있게 살아가는 일본인들만이 아니라, 집권자들을 내어 쫓고, 자기들이 지배하는 나라를 세워보겠다고 민중봉기를 일으키고 있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사람들이나,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얻기를 원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 참 생명입니다. 인간은 모두 죽음의 위협 없이 살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사람은 예수에게 와야 합니다.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로 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길(도)을 제시하는 철학과 종교가 세상에는 많이 있지만, 예수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온전한 길이 아닙니다. 인간의 철학과 종교는 모두 사람으로부터 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사람의 지혜, 사람의 의지, 사람의 노력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결정지어져 있는 사람의 것으로서 인간은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으로 영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신 예수, 인간의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예수, 말과 행동이 모두 하나님의 것인 예수, 이 예수는 사람으로부터 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죽음과, 죽음이 몰아오는 불안과 공포를 극복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늘도 주님은 여러분과 나를 부르십니다. 3/27/11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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