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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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852 date : 2011-08-29 22:42:25
NAME :    한영숙
SUBJECT :    선택받은 사람
HOME :    없음

“선택받은 사람”  창세기 25:19-34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에서가 야곱에게 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면서 한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그 후손 중 누구에게 계승되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 하나 밖에는 적자가 없었기 때문에 후계자가 누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60세가 되어서 두 아들을 쌍둥이로 얻게 됩니다. 에서와 야곱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서로 싸웠고, 태어날 때부터 심한 경쟁을 합니다. 에서는 튼튼하고 힘이 세서 먼저 나옵니다. 힘이 미치지 못한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뒤따라 나왔습니다. 형에게 지지 않으려는 야곱의 의지를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이 두 아이가 자라서 에서는 사냥꾼이 되고 야곱은 집에서 양을 치며 농사일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냥꾼은 용감하고 씩씩하고 남성적인 면모를 갖춘 사람이지만 사냥꾼의 생활은 안정되지 못합니다. 짐승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다가 짐승을 잡으면 돈도 벌고 먹을 것도 생기지만 그렇지 못해 허탕을 치면 끼니조차 얻을 길이 막연해 지는 것이 사냥꾼의 생활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 곳에 정착해서 살지 못하고 떠돌아 다녀야하기 때문에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일에 소홀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독립적으로 살아야하고 자기 한 몸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강인한 체력과 의지를 가지고 거칠고 단순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집에서 우리를 만들어 양을 치고 밭을 갈아 농사를 하고 사니 자연히 집과 가족을 중심으로 정착해서 사는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 가까이 있으면서 어머니를 돕고 집안일을 돌보고 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들이 잡아온 고기 맛을 즐기는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으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형제간에 일어나는 갈등은 이렇게 점점 복잡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서는 몹시 배가 고픈 상태로 집에 오게 됩니다. 아마도 여러날 걸쳐 제대로 사냥을 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인적이 없는 산속을 헤매며 짐승을 찾아다니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니 몹시 시장했을 겁니다. 여러 날 굶어 허기가 져서 더 이상 나돌아 다닐 수 없을 만큼 되어서 집에 돌아와 문을 밀치고 막 들어서는데 야곱이 죽을 쑤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솥에다 붉은색의 무엇인가를 끓이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거저 그 붉은 것을 좀 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그 때 야곱은 에서에게 조건을 내겁니다. 그 붉은 것과 장자의 명분을 바꾸자고 요구합니다. 
  장자의 명분(birth right)이란 형으로 태어났다는 기득권입니다. 인류는 세계 도처에서 맏아들에게 부모의 유산을 상속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관습을 지키라고 명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지켜지는 관습을 보고 야곱은 형에게 돌아가도록 되어 있는 장자의 특권을 빼앗으려 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싸웠지만 자치하지 못했던 그 특권을 지금 또다시 거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허기진 상태에 있는 형의 약점을 이용해서 자기 소원을 풀어보려는 것입니다.   

  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말합니다. ‘내가 지금 굶어죽게 되었는데 이까짓 장자의 명분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당장 먹지를 못하면 죽고 말텐데, 내가 죽고 난 뒤에 장자의 명분이고 뭐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 먹고 봐야지, 우선 살고 봐야지, 라는 말입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장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에서에게 맹세까지 시킨 후에 죽을 줍니다. 에서는 황급히 죽을 먹고 물을 마시고 일어서서 떠나갔습니다. 이 행동은 에서의 무감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배가 불러진 후에도 자기가 한 맹세를 후회하거나 억울해하는 기색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에서는 사람이 좋고, scale이 크고, 마음이 넓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에서를 묘사하기를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다”고 합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별관심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에서가 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파는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아브라함의 모습과는 아주 큰 대조를 이룹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의 죽음 정도가 아니라, 자기의 모든 미래를 포기하면서까지 이삭을 제물로 바칩니다. 그러나 에서는 당장의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팽개쳐 버립니다. 

  야곱은 아주 야비한 수단으로 형이 받도록 되어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로채려고 합니다. 훗날 야곱은 어머니와 짜고,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기도 합니다. 도덕적으로 보면 야곱은 비열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인간적으로 치사합니다, 남자가 좀스럽게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회 있을 때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는 정직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계승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니, 성경은 도대체 윤리도 도덕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없다고 분노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정직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독배를 마신 희랍의 철인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나, 인륜과 도덕을 중시하며 살아간 수많은 성현의 가르침에 비교를 해 본다면 성경의 가르침은 형편없는 수준의 것이라고 비판을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대로 야곱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게 된다면 이 세상의 법과 질서는 어떻게 되며, 인류가 추구해온 윤리와 도덕, 이념과 사상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흥분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산다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현실이 철학이나 윤리 도덕의 이론대로 되는 것입니까? 사람이 사는 것은 선과 악이 뒤범벅이 된 상태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할 겨를도 없이 순간순간 뭔가를 선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객관화시켜서 분석하고 따져보는 것이 학문이요 이론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삶의 현실이 아닙니다. 
  삶의 현실에 휩싸여 있는 사람, 그 삶의 와중에 있는 그 사람에게는 그 순간을 객관화시켜 볼 여유가 없습니다. 선도 악도 구별해서 행동하고 말고 할 여유가 없습니다. 선악을 구분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말은 이론이며, 사변입니다. 인생에는 방정식이 없습니다. 어떤 논리도 이론도 삶의 현실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삶의 현실은 악과 선이 뒤섞인 속에서 공식도 법칙도 미처 찾아내기 전에 순간순간 선택하고 결단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순간에, 생각 없이 건네는 말속에서, 무의식중에 행해지는 행동 속에서, 인간은 자기 속에 꿈틀거리는 욕망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자기의 관심과 소원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의 소꿉장난 같은 단순한 말장난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고 싶어 하는 야곱의 숨은 의지와 그것에 무감각한 에서의 무관심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하찮은 장난 같은 말속에 담겨 있는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을 묘사함으로 인간의 삶을 통해 성취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야곱이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려 했고, 형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기 때문에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계승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라고, 경쟁하라고 성경은 가르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런 내용을 가르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야곱이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이미 오래전에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두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고 에서를 버리셨습니다. 
  왜 그러셨는지는 모릅니다. 인간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로 하나님만이 아시는 오묘한 뜻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철저한 은혜요, 선물입니다. 누구도 불평할 수 없고, 대적할 수도 없습니다. 마치 토기장이에게 자기가 만드는 그릇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보여주는 태도는 어떤 의미를 가진 것입니까? 그렇다면 야곱은 왜 그토록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 애타했습니까?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귀하게 여기고, 잠시도 잊지 않고, 할아버지에게 주어지고 아버지에게 이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형에게로 갈까봐 노심초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표시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은 사람이라는 표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귀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귀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귀해서 잠시도, 한순간도, 그것을 잊지 못하는 야곱의 태도는 하나님에게 사로잡힌 자,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가 그 삶에서 나타내 보여주는 삶의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 단언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원하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표식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7/10/11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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