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로마서 12:3-13)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여러분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일이면 교회에 다니는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 외에는 일반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더 하는 셈이니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힘들고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에 다니는 일이 귀찮은 일이 되지 않으려면, 교회에 가서 무엇인가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하고, 교회에 다니므로 좀 더 세련되고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교회생활을 통해서 사람을 사귀는 교제의 폭이 넓어져서 사회생활에 이익이 되거나 생활에 발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교회생활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안 되는 지를 늘 저울질 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될 교회를 끊임없이 찾아 헤맬 수도 있습니다. 혹은 기독교 지도자들 중의 많은 사람들처럼 교회를 정치적 도구로 생각하십니까?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려 하십니까? 이것은 한국교회협의회, 미국교회협의회, 세계교회협의회, 등 교회 연합 단체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단체들은 이미 그 자체로서 정치단체입니다. 교회를 종교집단으로 보고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일은 기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적용이 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그리스도인이 솔선수범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앞장을 서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한 일을 위해서 교회는 힘이 있어야 하고, 교인들은 의식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일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교회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의미가 없다고 여깁니다. 아니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지옥에 가는데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녀서 천당에 가야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주변사람들을 전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이고, 자기 자신이 천당에 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할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은 한 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어야 정상입니다. 믿지 않는 이웃이 너무나 많고, 그들의 영혼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고, 그들을 전도하려 하는데 전도가 결코 쉽지가 않고, 교회에 데리고 나오는 일도 어렵지만 그들을 예수 믿게 하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항상 자신이 없습니다. 성경 말씀대로(오늘 말씀도 그 중의 하나이다) 살지를 못하고, 늘 죄를 지으며 살고 있으니, 천당에 갈 확신도 없고, 또 정말 죽은 다음에 갈 천당과 지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세 부류의 그리스도인에게 교회는 존재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에게 교회는 어떤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 때문에 교회가 그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면 존재 의미가 없다고 여깁니다. 교회를 문화단체로 보거나 정치단체로 보는 것이나 천당 가는 티켓을 제공하는 곳으로 여기거나 다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렇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교회는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고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고 교회보다 더 귀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예수를 전하는 일 외의 다른 어떤 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고,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죽은 후에 천당에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참된 교회가 되는 일에 몰두했을 뿐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이 참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로마의 화려한 문명과 세련된 문화를 부러워하지도 않았고,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정치적인 운동을 하지도 않았고, 그토록 종교적으로 열심인 유대교를 닮으려하지 않았고, 죽은 다음에 천당 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미래를 인간이 염려하거나 보장할 수 있는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예수께서 가신 그 길,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예수께서 가신 길을 가는 것이 교회의 길이요, 예수와 함께 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목표라고 여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화려한 문명과 대비되는 히브리인들의 초라한 문명이나 로마의 화려한 문명과 대비되는 초대교회의 초라한 모습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자신을 하나님의 선민으로 인식했던 사람들, 자신이 세계와 역사의 주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 그들이 바로 구약의 히브리인들이었고,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며,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 은혜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 이후를 사는 사람들이고, 종말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심판은 지나갔고, 이들은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어떠한 미래가 닥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이들은 예수의 아버지, 곧 자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의 주인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평화가 있고, 사랑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들답게, 구원받은 사람들답게, 은혜로 사는 사람들답게, 사랑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답게,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진실함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 이러한 교회는 존재 그 자체로 세상의 빛이고 소금입니다. 교회는 존재하는 것 자체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소중한 교회가 되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9/4/11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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