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빚으로” 로마서 13:8-10
오늘은 우리 교회의 스물아홉 살 생일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날을 기념하는 것은 지나온 날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갈 길을 점검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물아홉 살을 맞으면서 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로서, 어쩌면 우리 교회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 교회의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면서 내게 떠오른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빚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창립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졌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그것이 모두 빚인 줄을 몰랐던 철없는 목사였구나.” 하는 고백입니다. 목사인 나는 교인들의 수고를 교회가 혹은 목사가, 갚아주어야 할 빚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의 수고는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여겼고, 그들의 수고가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한 수고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어서야 그것이 얼마나 철없고 단순한 믿음이었는지를 깨닫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남의 도움 없이는 그 누구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특히 현대인은 그러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란 여러 사람으로 구성이 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는 다른 공동체들과 다르게 교회의 문을 들어서는 사람은 누구나 모두 교회의 구성원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함께 살게 되면 이런 저런 모양으로 서로를 돕게 됩니다. 한 예로서, 창립 초기에 우리교회에 출석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불교 신자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은 아주 부지런했고 교회를 돕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주일이면 일찍 와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교회의 문을 열고 안내하는 일을 도왔고, 예배 후에는 뒷정리하고 교회 문을 닫는 일까지 도왔습니다. 그러나 목사인 나는 이 청년이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교회의 직책을 맡길 수가 없었고, 오래지 않아서 이 청년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나는 빚을 지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내게는 교회가 진 빚을 갚을 능력도 없고, 더욱이 교회로 하여금 빚을 갚도록 만들 수는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목사입니다. 그러니 지난 29년 동안에 그 청년의 예와 같은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나는 그 대부분의 경우를 잊어버렸지만(잊어버리려 애써 노력한 결과로) 그렇게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나와 우리 교회에서 받은 상처로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수고와 그 수고에 충분히 보답해주지 아니한 한 목사에게 받을 빚이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받을 빚이 크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그 분노와 원망으로 인한 상처는 크게 마련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 싫어하는 이유가,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 교회는 공짜만 바라는 곳인 것 같아서일 것입니다. 대가는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끝없는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특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고 오늘 본문에서 말합니다. 사랑의 빚은 빚이 아닙니다. 사랑의 빚은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 모두 빚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면서도 상대방에게 대가를 바라지 아니합니다. 교회는 이러한 사랑의 빚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 사랑이 어떤 것인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참 사랑은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이 사랑에 빚진 사람들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갚을 길이 없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도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빚을 갚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갚을 힘이 없고, 가진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한없이 받기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한 순간도 참 생명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임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수고가 사랑의 수고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 물질을 바치고, 시간을 바치고, 생명을 바치는 것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의 빚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하든지, 어떤 희생과 헌신을 하든지,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사랑의 빚으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타산적으로 변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우성을 치고, 교회도 역시 번성하는 사업체처럼 되어야 한다고 세상이 요구를 해도, 메트로폴리탄 한인교회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않는 사랑의 공동체로 이 땅 위에 존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언하는 참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9/18/11(창립29주년 감사주일)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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