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받아들이라” 로마서 14:1-12
교회는 신앙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 가족이 된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비록 성격이 다르고, 자란 환경이나 배경이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도 인간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의견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신앙고백에도 색깔이 다르고 믿음의 깊이와 넓이가 다릅니다. 같은 말씀을 들어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전이해에 따라서 들은 말씀에 대한 해석이 달라집니다. 인간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쉽게 용납하지 못합니다. 비슷한 사람들만 서로 받아들이고 싶어 합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마음이 편하고 소통이 쉽기 때문입니다. 로마 교회에서 서로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큰 문제는 음식 문제와 절기를 지키는 문제였습니다. 고기를 먹어도 좋다는 주장과 고기를 먹지 말아야한다는 주장이 나뉘었습니다. 당시, 고기는 아무데서나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기는 이방 신당에서 제사 지낸 후에 남은 것을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이방 신에게 제사 지낸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과, 귀신은 없으니 그런 제사는 아무 의미가 없고, 음식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무엇이든지 먹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나뉘었습니다. 음식 문제와 함께 (특히 유대교 전통에서 지켜온 안식일이나 금식일 등) 절기를 지키는 문제도 율법을 지키는 일과 할례를 받는 것과 함께, 초대 교회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제각기 의견이 달랐고, 서로 자기 의견을 고수하며 각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 분쟁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식의 분쟁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만, 각각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받은 은사가 다르고, 생각하는 능력이 다르고,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지켜온 전통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믿는 사람의 의견이 일치 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인간적인 가치를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새 생명을 누리는 자유인으로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은 매사에 자신이 없고,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 몰라서 불안해합니다. 따라서 믿음이 약한 사람일수록 세부적인 규칙을 필요로 하고, 많은 법칙을 만들어서 그 법칙에 얽매여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믿음이 강한자가 누리는 자유를 약한자들이 다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강한자에게는 자유가 해방이요 기쁨이 되지만, 약한자에게는 자유가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믿는자는 죄와 사망에서 자유한 자들입니다. 율법에서 자유하고, 세상에서 자유한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예수 믿는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심판자가 되실 뿐 그 누구의 판단도 받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에서 믿는자의 자유가 싹트고, 그 자유가 자라갑니다. 믿음이 강할수록 그가 누리는 자유의 폭이 커지지만 믿음이 약한 자는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먼저 강한 자에게 부탁합니다. 믿음이 약한 자를 받아들이고, 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지 못하는 사람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믿음이 약한 자도 강한자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가 우상의 제물을 먹고 술을 마신다고 비난하거나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에 있는 사람을 심판하기 쉽습니다. 그 세계를 알지 못하면서도,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심판합니다.
사도 바울은 잘라 말합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니,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기 때문이다”라고. “남의 종을 심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리스도의 종을, 하나님의 종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네가 하나님보다 더 높고, 그리스도보다 더 높으냐? 네가 뭔데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을,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을 심판하고, 멸시하느냐? 그 사림이 구원을 받고 못 받는 것은 네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요, 주께 달린 것이다. 주께서 저를 구원하시리니 네 좁은 생각으로 형제를 괴롭게 하지 말라” 는 말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의 문제이니 각자 자신의 믿음에 따라서 할 일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가 양보하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는 약하기 때문에 양보할 능력이 없습니다. 약한자는 다만 남을 판단하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기의 좁은 소견으로 자유로운 형제를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강한 자는 그의 자유 때문에 믿음이 약한 형제가 거리낌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형제를 위하여 고기를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 것이 아름다우며, 식물을 인하여, 별것 아닌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일을 무너지게 하지 말고, 오직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라”(롬14:19-21)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9/25/11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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