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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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728 date : 2012-07-24 02:08:48
NAME :    한영숙
SUBJECT :    사랑을 배우는 사람들
HOME :    없음

“사랑을 배우는 사람들”  에베소서 3:14-19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믿는 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의 마음에 계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어서, 하나님의 세계로 더 깊이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증거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이며, 이로서 우리의 삶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갈증은 사랑으로만 해소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알기까지 인간의 영혼은 안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사랑을 찾지만, 문제는 무엇이 참 사랑이며, 어디에서 참 사랑을 찾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 때로는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지극하다 하여도 영원하지 못하며, 혈연의 사랑도 본능적인 욕심을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인간 세계에서 참 사랑이란 찾을 수 없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사랑은 인간의 영원한 꿈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을 위하여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 앞에서 모든 인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동시에 이 사랑으로 자신이 구원받는 것을 체험합니다.

  교회는 이 사랑을 알고, 이 사랑을 세상에 전해야 할 사명을 지닌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오해하거나 잘못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조건 없는 자기희생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욕심이 그 사랑을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고, 왜곡시켜서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한 방패나 도구로 예수의 사랑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을 파괴하기도 하고, 치부를 하기도 하고, 권력을 장악하기도 하고, 심지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가 북한 동포들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만든 장본인이 된 것이나,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60년대부터 시작된 노동운동에 밑거름이 된 것이나, 70/80년대의 반정부 운동에 앞장선 것이 모두 예수의 사랑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심지어 1920년대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세상 안에서 사랑을 실현시키려는 점에서 같은 사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발간 된 신문이나 잡지에는 “기독의 사상과 마르크스의 사상은 같다”는 식의 주장을 담은 글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소위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예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다는 말입니다.               
 
  나는 대학 시절에 죄 사함을 받는 일과 예수의 사랑이 허구가 아님을 스스로 확증하고 싶어서,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민중’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습니다. 공장 노동자로 위장 취업을 해서, 하루 종일 힘들게 노동하면서도 멀건 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고, 간장과 마가린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이 저녁 식사의 전부인 노동자들의 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었고, 화장실도 없는 판잣집 다락방에서 사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하여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가 지도자와 자수성가해서 지방 유지로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증오심과 반항심을 키웠습니다. 공산주의 혁명 투사들이 가는 길로 들어섰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 길을 완전히 바꿔 놓은 또 다른 경험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일 년이 지난 후 학교를 휴학하고 버스 회사에 차장들을 위한 “교양 선생”으로 취직을 하였습니다. 그 회사는 사장님이 교회의 장로님이셔서, 고향을 떠나,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힘들게 노동하며, 합숙생활을 하고 있는 차장들을 특별히 배려하여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교양을 함양시키기 위하여 만든 자리에 취직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 회사에서 10개월을 일하면서 깨달은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는 한국의 산업사회가 아주 미개한 상태여서 노동자의 권익 옹호를 위한 노력보다는 합리적인 경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세워지지 않은 허허벌판에서 집을 지으려고 애쓰고 있는 국가를 위해서 벽돌 한 장이라도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누군가가 쌓아놓은 벽돌을 허무는 일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둘째는 산업 사회의 피해자이며 눌린 계층이라고 여겨왔던 버스차장들이나 기득권층이라는 여대생들이 다 같은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노동자들의 고민이 경제적인 평등만 이루어지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경제적인 불평등의 문제보다는 가족에 대한 연민, 가족관계의 갈등, 남녀 문제가 주는 기쁨과 아픔, 미래에 대한 불안, 외모와 건강에 대한 관심, 등 제각기 그 나이의 여자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를 힘들어한다는 점에서, 대학생들이나 근로자들이 모두 다 꼭 같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의 깨달음이 나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내 한계를 깨닫게 했고, 성경에 눈을 돌리게 했으며, 나를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사회 변혁을 위한 도구로 이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과는 상관없이 거론 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는 호화롭게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도록 어떤 정책을 제시하거나 실시하는 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일들을 위해서는 정치나 경제, 법이나 행정의 이론이 필요한 것이지, 사랑이라는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을 뒤엎는 혁명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사랑을 실천하신 길은 십자가를 통한 자기희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기희생이며, 사랑은 지극히 인격적인 용어입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야기 될 수 있는 말입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신 예수의 말씀이 사랑의 본질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인류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한 사람, 즉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고백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예수의 사랑은 “나” 자신에게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쉽게 “나는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지만, 온 인류를 사랑할 수는 있다”는 식의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사랑할 만한 대상이 아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자기기만입니다. 
  우리 인간의 영원한 희망이며,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참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참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사랑을 배워가는 곳이고, 사랑을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의 사랑, 참사랑을 배워갑니다. 교회로 모인 사람들은 자기희생의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비영리단체나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예로서 교회의 재정은, 자기주머니는 털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기부를 하게 만들어, 모금된 돈으로 운영되지 아니합니다. 교회에서 인정받는 훌륭한 지도자란, 자기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부리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갑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교회생활을 통해서 십자가를 지는 희생의 사랑을 배워갑니다. 지체가 된 사람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기 위해서 자기주장을 꺾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고, 끝까지 참고, 견디며, 할 수 있는데 까지 자기를 희생해감으로 예수의 사랑을 알아가고 배워갑니다. 이러한 교회의 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 길이와 폭, 높이와 깊이를 알게 됩니다. 교회의 어른들은 예수의 사랑을 다른 지체들보다 더 많이 더 깊이 아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능력은 사랑의 능력입니다. 얼마만큼 사랑할 수 있느냐, 얼마만큼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평가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 땅의 교회들이 예수의 사랑을 아는 참 된 교회로 존재할 때에 세상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참 사랑을 배우는 사람들이 되라고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부름에 합당하게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7/22/12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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