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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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781 date : 2013-01-27 02:33:45
NAME :    한영숙
SUBJECT :    성령 공동체
HOME :    없음

“성령 공동체”  사도행전 8: 14-17  

  교회는 세례 공동체입니다. 교인이 되는 출발점을 세례 받음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세례의 근원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단강가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사실을 모든 복음서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세례는 기독교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종교단체에 입단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는 일은 예수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의식입니다. 당시 많은 세례공동체들에서 세례는 구약의 할례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을 유대인으로 구별하기 위하여서 아이가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 당시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세례 공동체들은 사람의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한다는 의미에서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 역시 씻어 깨끗하게 된다는 의미와 죄 사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외침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것이었고 이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회의 세례에는 단순히 씻어 깨끗하게 된다든가 죄 사함을 받는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의 모든 세례 공동체들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 받음과 성령 받음이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저들이 세례는 받았지만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저들을 위해 기도하여 성령을 받도록 했습니다.
  이 짤막한 기록은 세례 받는 것과 성령 받는 것이 일치하는 일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교회의 전승입니다. 교회는 세례공동체이며 동시에 성령공동체입니다. 복음을 믿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성령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 받음과 성령 받음이 일치한다는 전승 역시 예수의 수세에 소급됩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와 예수 위에 임하였으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는 하늘의 소리가 있었다고 모든 복음서가 증언합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임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하늘의 소리를 듣게 된 것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모두 성령을 받는다는 말은 세례를 받는 순간에 어떤 특수한 형태의 성령 체험을 한다는 말이 아니라, 세례를 받는 사람이 그 때부터 성령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이들은 성령 체험으로 방언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세례의 순간에 방언이 터져 나와야 된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방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세례를 줄 수 없다고 규정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성령 받음과 방언하는 것을 동일시하는 이들은 성경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누구든지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 고 확언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을 받은 성령공동체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 공동체에 속한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특징은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죄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죄 사함을 받고, 죄로부터 자유를 얻었다는 것은 죄의 결과인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는 자에게 육신의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닙니다. 육신의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드는 상태일 뿐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죽음 대신에 영원한 생명이 주어집니다. 
  죽음으로부터 자유 한 사람은 세계로부터도 자유 합니다. 자기 자신과 세계에 속한 모든 것들이 죽음에 속한 것들임을 알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으며 세계의 것들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자유 한 사람은 세계에 빠진 인간이 사로잡히는 불안에서 해방을 받고,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가 근심하는 것이 있다면 오직 한 가지,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고전7:32) 하는 근심뿐입니다. 주를 기쁘시게 하고 싶은 근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싶은 근심은 근심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가 삶을 영위해가는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 한 사람은 율법으로부터도 자유 합니다. 더 이상 율법이 그를 정죄하거나 구원하는 절대적인 규범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자유롭게 율법의 참 뜻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율법의 참 뜻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만이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자유의 힘이 있습니다. 교회는 자유 한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자유의 힘이 역동하는 곳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은 자유에 기초 하여 있습니다. 
  자유란 참된 미래를 향해 솔직히 서는 것입니다. 자유란 참된 미래, 열려진 미래에 의해 오늘의 자기가 규정되게 하는 것입니다. 열려진 미래를 향해 힘차게 전진해 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자유의 힘입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죄와 죽음의 노예가 된 꽉 막힌 사람처럼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려워서 과거, 즉 이미 있는 것에 매어달리지 않으며, 현재를 불평과 불만, 근심과 걱정, 불안과 공포로 채우지 아니합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끝없는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사랑을 거부하기 위하여 법과 윤리를 방패막이로 내세우지도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시어 성령공동체로 삼으셨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혀, 성령을 따라 살며, 자유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1/13/13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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