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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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816 date : 2013-04-30 06:02:45
NAME :    한영숙
SUBJECT :    내가 누구이기에
HOME :    없음

“내가 누구이기에”  사도행전 11:1-18  

  누가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도행전에서 계속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탄생과 성장 과정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들을 통하여 부활한 예수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사도행전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인간 예수를 직접 만나서 알고 있던 사람들도 있고 사도 바울처럼 인간 예수를 직접 본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예수를 직접 만났느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교회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은 모두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들입니다. 누가는 그들이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으며, 살아계신 예수를 통하여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고, 그들이 예수를 전하는 증인으로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사도행전에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누가는 이방인들 속에 전파되기 시작한 복음의 씨앗이 이방인을 구원하고 이방세계를 변화시킬 거대한 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가는 복음의 전개를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파악한 사람입니다. 누가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인간의 도리를 모르는 사람들,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죄를 먹고 마시는 사람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현장을 기적으로 체험하는 감격을 가지고 기록한 역사의 증인입니다. 

  누가는 그 놀라운 일들을 가능한 한 생생하게 기록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기록물이 현장의 생동감을 아무리 잘 전한다 해도 시대와 환경이 다른 사람들이 기록자가 가진 당시의 흥분과 감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들과 유사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이방인으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감격에 동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고넬료에 관한 이야기는 사도행전 10장과 11장에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에게 이 이야기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 중에 유일하게 이방인이었던 누가에게 교회가 이방인들 속에서 세워지고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서 기적이었을 것입니다.   

  교회의 초석이라고 불리는 베드로가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에게 전도한 이야기입니다. 고넬료가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으니 당시의 계급사회에서 보면 천한 계층에 속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민사상에 투철했던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과 함께 성찬을 나누는 신앙공동체의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로마의 군인이라면 유대인들이 적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로마 군인은 자기 나라를 식민 통치하고 있는 적국, 로마를 수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도 베드로가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고넬료에게 세례를 주고 함께 성찬을 나눈 사실을 비난하며 그 전말을 추궁했습니다. 교회의 수장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세례를 주어 교회의 한 식구가 되게 만든 사실을 비난하는 소동이 교회 안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자신과 고넬료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신 말씀을 들었다는 사실과,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저들에게 성령이 임했던 사실을 모두 말하며,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고 대답함으로 자기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소동을 그치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방인을 교회에 받아들이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겼다고 본문은 전합니다. 

  우리는 자주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갑니다. 교회의 삶은 더욱 그러합니다. 교회가 직면하는 상황이 언제나 그러하고 교회가 만나는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모습은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제각기 다르듯이, 2000년 전 로마의 교회가 직면했던 상황과 예루살렘 교회가 직면했던 상황이 다르고, 21세기 뉴욕 맨하탄에 있는 우리 교회의 상황과 뉴저지에 있는 교회의 상황이 다르고, 서울에 있는 교회와 북한에 있는 지하교회가 처한 상황이 다릅니다. 비록 같은 지역에 있어도 모든 교회는 다 제각기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기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 교회 안에서 함께 성찬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도 제각기 다릅니다. 사람의 삶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각자 그가 살아온 삶의 자취, 지나온 환경, 그가 태어나고 자란 가정의 배경, 등 어느 것 하나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이처럼 제각기 다른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교회입니다. 상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기에 그들이 체험하고 믿는다고 고백하는 부활한 예수의 모습도 다양합니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다양한 것처럼 교회가 다양한 모습을 지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획일화된 사회, 독재 사회는 인간의 자유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특정한 인간(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독재자들, 특히 공산주의 독재자들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교회를 무서워하고 탄압합니다. 그들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교회를 싫어합니다. 그들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밀어내고 하나님의 자리를 자기가 대신 차지합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앉아있는 것이 우상입니다. 그 우상이 사람일수도 있고 물질일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있는 종교가 우상으로 변질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유대교가 그러했습니다. 중세기 로마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교회와 성직이 우상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우를 범하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넬료에게 세례를 베풀고 교회에 받아들인 베드로를 비난했던 초대교회의 지도자들도 이러한 우를 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고 한 베드로의 고백을 자기 자신의 고백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지닌 우리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베드로의 고백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라고 하는 말을 우리의 마음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혹시 내가 지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으려는 것이 아닌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때에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영위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완성되기를 원합니다.      
                                                         4/28/13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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