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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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733 date : 2013-08-06 12:45:52
NAME :    한영숙
SUBJECT :    순종과 사랑으로
HOME :    없음

“순종과 사랑으로”  골로새서 3:18-24  

  요즈음 세상에서 순종을 말한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여자들과 젊은이들은 “누가 누구에게 순종을 하라는 말이냐”고 벌떼처럼 덤벼들 것 같습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한 젊은이(성재기)가 한강에서 투신하여 죽었습니다. 그는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 그가 이끌던 “남성연대” 라는 단체를 홍보하고 모금을 할 목적으로 한강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자신의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의 한국사회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세력다툼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한국사회는 지금 남녀 사이만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 사업주와 종업원, 부자와 가난한 자,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당과 야당, 우파와 좌파, 등,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상대로 죽기 살기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가 이러한 갈등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500년 동안 이어져온 가부장적인 유교문화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마찰을 일으키고 있으며,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남과 북이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세력다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인간은 항상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존재해왔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순종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서 저항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추위와 싸우고 더위와 싸우고 세균과 싸우고 자연과 싸우고 이웃과 싸우며 생존합니다.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원초적인 집단인 가정도 예외가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을 약속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룹니다. 사랑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부부의 관계이지만 부부 사이에도 힘겨루기는 영원히 계속됩니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 하는 문제로 부부는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과거 수렵사회나 농경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육체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던 시대에는 힘센 남자가 여자를, 어른이 아이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했고, 자연히 남성 중심의 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사회에서 기득권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력과 지위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법과 제도를 만듭니다. 이러한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화와 기계화의 영향으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육체의 힘보다는 정신과 기술의 힘이 요구되는 현대에 와서 남녀의 관계도 변하게 됩니다. 남녀 관계가 변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 전체의 관계가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끝없이 투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을 향해서 오늘 본문은 순종과 사랑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지배하는 남편, 어른, 상관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고, 자기가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대상인 아내, 아이, 노예를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잠시, 혹은 어떤 조건 하에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우에 순종하고 사랑하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탁상공론입니까? 허구에 불과한 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그런 엉터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탁상공론에 불과한 말을 가지고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게 한다면 정신병자나 사기꾼이 아닙니까? 21세기에 성경대로 살겠다는 기독교인들은 모두 정신병자이거나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합니까? 아니면 이 말씀을 폐기처분해야 합니까? 이 말씀의 참 뜻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질문해야 합니다.  

  먼저 이 말씀은 명령문으로 되어 있지만 실상은 명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순종과 사랑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삶의 지침입니다.   순종과 사랑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은 생명의 힘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는 순종과 사랑의 능력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다시 하면 이러합니다. “너희는 순종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 너희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자녀들은 부모들에게, 노예들은 상전들에게 순종할 수 있고, 남편들은 아내들을, 부모들은 자녀들을, 상전들은 노예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역시 투쟁입니다. 가장 큰 싸움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사람이 순종할 수 없는 자아, 저항과 반항을 일삼는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길 때에 순종이 가능합니다. 미움과 증오, 질투와 경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을 꺾어 이길 때에 사랑이 가능합니다. 
  순종과 사랑으로 사는 것은 구원받은 자의 삶의 내용입니다.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때에 순종할 수 있다면,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다면, 그때 그곳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십자가를 원하지 않지만, 자아의 죽음을 원하지 않지만, 슬픔과 고통을 원하지 않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줄 믿기에 순종합니다. 주어진 현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쓰라림을 견디며, 아픔을 참으며,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모두를 인정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아픈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순종하는 삶입니다. 
  눈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도 아버지이고, 못난 어머니도 어머니이며, 패역한 자식도 자식이며, 병든 형제도 형제이기에, 그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아니하고 사랑으로 안고 갑니다. 아프고 쓰라린 상처나 수치스럽고 한 맺힌 과거도 사랑으로 감싸 안으며, 오늘의 수고를 감당해가는 것이 순종하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에,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기에, 순종하고 사랑합니다. 순종과 사랑이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의 안식과 기쁨으로 인도합니다. 순종과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고, 감사와 기쁨으로 세상을 채우는 여러분과 내가 되기를 원합니다.
                                                8/4/13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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