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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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741 date : 2013-09-10 01:46:04
NAME :    한영숙
SUBJECT :    오네시모를 얻은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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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시모를 얻은 바울”  빌레몬서 1-21  

  빌레몬서는 바울이 나이 많아 옥에 갇혀 있으면서 감옥에서 만난 오네시모라는 노예를 위하여 빌레몬에게 쓴 편지입니다. 빌레몬은 그의 아내(압비아)와 아들(아킵보)이 모두 독실한 신앙인이었으며, 그의 집에서 교회가 모일 정도로 큰 부자였습니다. 
  당시의 부자들은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인데 도망을 친 것 같습니다. 오네시모가 어떤 일을 했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끼치고 도망을 쳤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의 법에 의하면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로서 그의 생사가 주인의 손에 달려있었고, 도망을 친 노예는 십자가형에 처할 수도 있었습니다. 노예 신분의 오네시모는 잡혀서 감옥에 갇혔고 감옥에서 사도 바울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했고 오네시모는 예수를 믿는 믿음의 형제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형제라는 하나의 이유 때문에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위하여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이 부탁은 빌레몬 개인에게 하는 부탁이라기보다는 빌레몬의 교회 전체에게 하는 부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오네시모를 노예로 여기지 말고 형제로 여겨달라고 부탁합니다.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자유로운 전도자로 자기에게 다시 돌려보내라는 부탁입니다.  바울은 이 부탁을 하기 위하여 오네시모를 자신이 감옥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도 있지만 바울은 겸손하게 부탁합니다. 그것은 빌레몬의 선의가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의지의 결단에 의한 것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존중하는 만큼 빌레몬도 존중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신분 사회에서 귀족과 노예는 형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신분이 다르고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사랑하며 존중하는 동급의 형제가 된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을 가리켜 기적이라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기적입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이러한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믿음으로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의 증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에는 특별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진 빚을 탕감해 주라는 바울의 부탁입니다. 어려운 부탁을 하면서 바울은 빌레몬에게만 손해를 감수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대신 오네시모의 빚을 갚아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의 빚을 탕감해주면 바울 자신이 빌레몬에게서 받아야 할 빚을 받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약속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친필 서명을 했습니다. 바울에게 얼마의 재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네시모를 위하여 자신의 소유를 내어놓겠다는 말입니다. 바울에게 재산이 없었다면 자기가 받아야 할 생활비 같은 것을 받지 않겠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위하여 빌레몬에게 한 약속에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하여 짐을 나누어지려는 사도 바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이 약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가 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다 함께 짐을 나누어져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참 사랑은 예수께서 십자가로 보여주신 자기희생의 사랑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 하나님의 사랑, 참 사랑은 자기희생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통하여 보여주신 자기희생을 성경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에 그것은 자기희생을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의 몸이신 교회를 위하여 희생을 감수합니다. 자기희생의 사랑은 자유로운 결단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기희생은 강요될 수 없습니다. 희생을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라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랑으로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의 전도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후에 오네시모는 교회를 위하여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네시모 한 사람을 위하여 썼던 바울의 편지인 빌레몬서가 성경으로 남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전도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전도를 하려는 사람의 마음에는 자기희생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주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려는 각오와 상대방을 얻기 위하여 자기가 손해를 보아도 좋다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구원하기 위해서 손해를 보아도 좋다는 각오가 없이는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전도자는 이기적인 욕심을 버려야 하고 고달픔과 억울함을 견뎌야 합니다.    
                                                   9/8/13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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