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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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725 date : 2014-02-10 12:22:36
NAME :    한영숙
SUBJECT :    신앙인의 법과 윤리
HOME :    없음

“신앙인의 법과 윤리”  마태복음 5:17-26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교회는 법을 제정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지키도록 요구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제정한 법은 교회 안에서만 통용 되며, 국가의 법이 교회의 법을 통제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이 원칙이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문에 종교적인 이유로 국가의 법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교회 안의 분쟁을 일반 법정이 어떻게 다룰 것인지, 하는 등등의 문제들을 가지고 오늘날 미국의 법정은 씨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의 시대는 종교가 국민 생활 전체를 지배하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주 쉬운 예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다스리는 중동의 국가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저들에게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인 자유가 없습니다. 100년 전 한국인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살았습니다. 유교에 의해 통치되던 조선의 백성에게는 유교의 법을 벗어날 자유가 없었습니다. 역사가들이 중세기를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도 중세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사람들이 자유를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역시 20세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았던 “무신론”이라는 이름의 종교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종교가 일상생활을 지배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만약 오늘날 교회가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워서 국가의 법을 지키지 않으려 한다면 오늘의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이 시대는 모든 사람이 국가의 법을 따라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에는 죄 없는 사람들이 와서 머무르게 되어 있고 죄인들은 주로 감옥에 가 있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교인들을 향해서 자꾸만 죄인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하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성경이 그렇게 명시하지 않느냐고 대답할 것입니다. 성경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죄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경 구절들은 수 천 년 전에 통용되던 유대인들의 법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수 천 년 전의 유대인들이 지켜야 했던 법 조항들을 가지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문자 그대로 적용해서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정죄는 힘이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구속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술 취한 일 때문에, 이혼 때문에, 혹은 동성애 때문에 감옥에 가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시대는 종교의 경전이 일반 사회의 법을 제정하는 기준이 아니고 종교 기관이 법을 집행하는 기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교회는 인간을 죄인이라고 말하는지, 우리는 왜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이 질문에 대답해주고 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에는 그들의 종교와 그들의 사회가 분리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법을 제정하고 집행했던 기구가 유대교였습니다. 
  당시의 서기관들은 신학자들이었으며 대중의 선생들이었고 법학자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로마의 지배권 아래에 있으면서 로마의 법을 지켜야 했으나 그들의 실생활은 그들 자신의 법, 즉 유대교의 법을 따라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대로 살인자는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너희가 들었으나...” 라고 하는 예수의 표현은 곧 율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지배하는 법조항, 즉 모세가 전하여준 율법 조항을 지킴으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의로움을 주장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모든 조항을 지키면 의로운 자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법령이 문제가 아니라, 살인을 일으키게 되는 인간의 근본 동기, 즉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까지 살인과 같은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에게 화를 내는 것, 분노를 느끼는 것, 욕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살인죄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아무리 성실해도, 즉 예배를 드리고 제물을 드려도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해하라는 말) 그것으로 윤리적 범죄를 씻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지 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세워진 자로서 인간은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윤리적 요구는 곧 하나님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관계 속에서 살도록 지으셨고, 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법은 인간의 요구를 충족시키면 만족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법은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려합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을 뜻을 생각할 때에 인간은 모두 죄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전부를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세상의 법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법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법은 다 지킬 수도 있고, 법을 속일 수도 있고, 법망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눈은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감출 수도 없고 거짓으로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생각, 감정, 의지, 전부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죄인이 되며, 동시에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로서 이웃 앞에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란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용서를 필요로 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로서 이웃과의 관계를 돌아볼 때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남을 향해 손가락질 할 여유조차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죄인인 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교인들이 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죄인인 줄 안다면, 오늘의 한국 교회가 훨씬 조용하고, 평화롭고, 세상을 향해 말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세상이 그 말을 듣게 될 것이고, 세상을 잠잠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하나님의 용서를 갈구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2/9/14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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