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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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785 date : 2014-02-17 10:35:05
NAME :    한영숙
SUBJECT :    믿을 수 있는 사람
HOME :    없음

“믿을 수 있는 사람”  마태복음 5:33-37 

  사람의 관계 중에서 가장 좋은 사이는 서로 믿을 수 있는 사이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 우리는 평안을 누립니다. 남녀 사이의 열렬한 사랑도 서로 간의 믿음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언제 어떻게 그 사랑의 관계가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부도, 자식도 믿을 수 없으면 남보다 못하고, 아무리 유능한 상사나 직원도 믿을 수 없으면 함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사람을 믿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족 간에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믿으면서 출발해야 하는 결혼도 상거래처럼 되었습니다. 심지어 혼전 계약서를 쓰고 결혼하는 남녀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혼전 계약서라는 것이 보편화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은 당연히 믿을 수 있고, 또 믿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었습니다. 교인이 목사를 믿지 않고 목사도 교인을 믿지 않습니다. 목사가 같은 교회를 섬기는 교역자나 교인을 믿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가족이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노출 시키는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숨기거나 감추는 것이 없는 관계가 가족입니다. 육신의 가족이나 신앙의 가족이 모두 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형제자매입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믿음의 형제들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그의 말을 믿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을 믿는 것은 그의 말을 믿는데서 출발합니다. 그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맹세를 했습니다. 자기의 말이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맹세를 한 것입니다. 
  맹세를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였습니다. 하늘을 두고 맹세하고 땅을 두고 맹세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 맹세하고 부모나 조상을 두고 맹세하고 자식을 두고 맹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말로 하는 맹세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사람들은 맹세의 내용을 문서로 작성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대가를 치르겠다는 각서를 쓰기도 하고, 법적인 효력을 가진 계약서를 쓰기도 합니다. 그래도 믿지 못하면 보증인을 세워서 대신 약속을 지키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보증을 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우리는 잘 압니다. 보증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그만큼 신용이 없는(믿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맹세를 해서라도 서로를 믿어 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향하여 “맹세하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맹세하지 말라. 하늘로도 말고 땅으로도 말고 예루살렘으로도 말고 네 머리도로 말라.” 고 하십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고 하십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정직하라”는 것입니다. “진실 하라”는 것입니다. “예면 예, 아니면 아니라” 고 하라는 것입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한 의도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정직해야 합니다. 교회는 정직한 사람들, 진실한 사람들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교회가 거짓이 판을 치고 거짓말이 난무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얼렁뚱땅 둘러대는 말이 사람 사이를 지배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정직한 사람, 진실한 사람에게 맹세는 필요 없습니다. 과장된 말은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정직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진실에 직면할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 때문에 입게 될 피해를 감당할 용기가 없고, 불이익을 감수할 용기가 없고,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를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손해나 피해를 감수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정직하기 위해서는 잔머리 굴리기나 꼼수 부리기를 멈출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해타산을 하지 않는 정직한 믿음이 그리스도인을 순교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옳은 것을 옳다 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 고 하는 진실함을 지키는 용기가 자기의 생명까지 바쳐서 믿음을 지키게 만듭니다. 
  평소에 적당히 얼렁뚱땅 거짓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 때가 오면 자기도 순교자가 될 수 있을 것처럼 큰 소리를 치는 것은 공허한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또한 정직함은 자유로움에서 옵니다. 정직함은 사람이 자기 한계를 아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아무리 정직하려고 해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진실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있음을 압니다. 아무리 용감하고 정직해도 약속을 지킬 수 없는 때가 있음을 압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그렇고,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리라”는 맹세를 한 남녀의 약속도 지키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자기가 시간과 공간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장래 일을 염려하여 거짓을 꾸며대거나 술수를 부리지 않습니다. 지금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미래에도 이익이 될 것인지, 혹은 해가 될 것인지를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매 순간 정직할 수 있을 뿐임을 압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지금 자신의 정직함이 장차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유롭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께서 그 십자가를 모면해보려고 거짓을 꾸며대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무가치하게 보이던 그의 진실함이 그를 십자가에서 억울한 자로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의 사람이기를 원한다면 먼저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알고 자기 한계를 알아서, 거짓과 허세로 자신을 치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는 자유함으로 매순간을 살아가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우리 교회는 믿을 수 있는 교회가 됩니다. 믿을 수 없는 세상 중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들, 믿을 수 있는 교회가 세상의 빛이요 소금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라고 주님이 오늘도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에 진실하게 응답하기를 원합니다.   
                                                           2/19/14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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