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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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697 date : 2014-04-20 02:23:00
NAME :    mkumc
SUBJECT :    십자가 앞의 사람들
HOME :    http://www.mkumc.org

“십자가 앞의 사람들”  마태복음 26:6-35  

  오늘부터 한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예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일을 기억하는 주간입니다. 이는 곧,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기억하는 주간이라는 말입니다. 
  십자가 처형은 인류가 가진 사형 방법 중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참혹한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 있는 예수와 그 주변의 사람들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은전 30개에 예수를 판 가롯 유다로 시작해서, 예수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큰 소리쳤던 베드로의 이야기로 엮어집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성공하고 출세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예수와 함께 영광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언젠가 예수의 좌, 우편에 앉아서 세상을 다스릴 것을 꿈꾸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꿈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이 가룟 유다인 것 같습니다.
 
  유다는 제자들 중에서 가장 신임이 두터웠습니다. 그는 예수와 제자들이 쓸 돈을 관리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아무리 예수를 따라 다녀도 한 자리를 하게 될 것 같지 않고, 성공도, 출세도 허사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를 유대교의 지도자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유다는 주님을 판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배신자는 유다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수제자로 불리는 베드로 역시 십자가 앞에서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루 밤 사이에 “나는 예수를 모른다.” 고 세 번씩이나 부인을 했습니다. 자신이 체포되어 심문을 당하는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모든 제자들은 다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주변에 남아 있지 않았고, 모두 다 도망쳤습니다. 혹시라도 예수와 한 패라는 이유 때문에 붙잡혀서 십자가에 처형당하기라도 할까봐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비겁하고 추한 배신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제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한 여인이 있었다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이야기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전해지는 때는 언제, 어디서든지 전해져야 할 중요한 이야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열두 제자의 명단에 들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이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당시는 여인과 어린이는, 노예처럼, 사람으로 취급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모든 제자들이 배신자가 되었던 그 때에 예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예수의 머리에 값비싼 향유를 부음으로 예수의 주검을 준비했고, 십자가를 앞두고 고독했던 예수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여인도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이 여인은 노동자 한 사람의 일 년 품삯에 해당하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으면서도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하는 일을 두고 생색을 내지도 않았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언젠가 예수께서 성공하고 출세하면 자기의 공로가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고, 타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예수께서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저울질하지 않았고,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거나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오직 사랑으로 주님을 섬겼을 뿐입니다. 그는 주님께 받은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을 섬겼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을 향유 한 옥합과 비교할 수 없었고, 그의 전 재산을 바쳐도 아깝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섬김이야말로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순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일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언제나 온갖 종류의 사건 사고로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때로는 주역으로, 조역으로, 가해자로, 피해자로, 혹은 방관자로 역사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삶의 순간, 순간에 우리는 각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를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주님께, “내 니이까?” 라고 질문했던 것과 같이, 우리는 항상 “주님, 나는 지금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바로 그 배신자가 아닙니까?” 라고 질문해야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가룟 유다와 같을 수도 있고, 베드로와 같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늘 배신자의 자리에 서고, 항상 배신자의 길을 걸어오지는 않았습니까? 여러분도 주님께 향유를 부었던 여인처럼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배신자입니까?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이 속한 가정이나 국가가 어렵거나 교회가 어려우면 누군가를 비난하기 시작하고 도망갈 궁리부터 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한국인인 우리는 오늘 역사의 현장에서 수난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조국 앞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대답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어찌되든 상관이 없고 오직 인기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사람입니까? 혹은 적에게 유리한 말을 하고 적을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대한민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는 사람입니까?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북한 동포들 앞에서는 또 어떠합니까? 그들을 압제하는 채찍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까?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알고 그들의 해방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모든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인간일 뿐입니다. 다만 어떤 인간의 모습으로 주어진 순간에 자신을 드러낼 것인지를 결단하는 것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몫입니다. 배신자가 될 수도 있고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 앞에서 그와 관계된 사람들이 자기를 숨길 수도 없었고, 속일 수도 없었던 것처럼 인간은 결정적인 역사의 순간에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게 됩니다. 십자가의 순간은 모든 인간을 진실에 직면하게 하는 순간입니다. 
  십자가의 예수 앞에서 각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이 한 주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4/13/14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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