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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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713 date : 2014-05-04 09:50:26
NAME :    mkumc
SUBJECT :    평강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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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19-20  

  고난 주간에 시작된 서해 바다의 슬픈 이야기가 지금까지 한국의 언론 매체들을 채우고 있습니다. 열흘이 넘는 날들을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가 기억이 납니다. 그 영화의 제목도 내용도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영화가 하려던 말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죽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영화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아내의 현실에 매달린 남자가 자기 자신도 죽음을 향해 가게 됨으로 그를 둘러싼 세상을 온통 죽음의 상태로 만들어 가는 것을 아주 잘 묘사했었다고 기억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재난이란 항상 일어납니다. 그것이 자연이 가져다주는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재난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무책임함과 부주의로 인해 일어나는 재난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한국인들이 그토록 무책임하고 부주의하게 얼렁뚱땅 살아가는데도 그 정도의 재난밖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원칙을 따라 꼼꼼하게 따지는 사람을 아주 싫어합니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조롱합니다. 얼렁뚱땅 적당히 봐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능력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삶에 대한 이런 태도는 어린 시절부터 눈치를 보고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사람들의 비위나 맞추면서 얼렁뚱땅 살아가는 습관을 길러줍니다. 어려서 몸에 밴 습관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심해지기 마련입니다.      
  300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재난이 수천만이 몸담고 있는 국가적 재난이 되도록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목소리가 큰 언론인들이 그러합니다. 슬픔을 당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얼렁뚱땅 보도하며 슬픔을 당한 사람들이 분노를 쏟아놓을 대상을 만들어내는 일에만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많은 언론인들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통곡소리를 온 국민이 들어야 하고, 온 국민이 함께 통곡을 해야 하고, 슬퍼하는 사람이 있는데 기뻐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웃는 모습이 지면에 실린 사람은 자살을 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계획한 일을 취소해야 하고 하던 일도 중단해야 하고 기쁜 일이 있어도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겪을 것인지, 또 국가가 감당해야 할 손실은 얼마나 클 것인 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 또한 무책임함과 부주의함의 전형적인 행태입니다.   

  사실 슬픔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누구를 비난한다고 해서 슬픔이 감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악을 쓰고 비난을 퍼부어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슬픔을 분노로 바꾸어 세상을 뒤집어엎는다고 해도 자기 자신의 슬픔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슬픔이 만들어내는 혼란 속에서 잠시 자신의 슬픔을 잊어버릴 수 있고 슬픔을 확대시켜서 공동체를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하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인간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불안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 때문에 슬픔으로 통곡하는 소리가 누군가를 향해서 불만을 쏟아낼 때 사람들은 그 소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쉽게 동조하게 됩니다.     
  그러나 슬픔을 극복하는 주체는 슬픔을 당한 개인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슬픔을 당한 사람 자신이 그 슬픔을 극복해야 합니다.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각 개인에게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국가관리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 역시 자기가 극복해야 할 자신만의 슬픔과 불안을 지니고 사는 한 개인입니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모두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자기만의 생이 있으며 자기 자신이 극복해야만 하는 슬픔과 불안이 있습니다. 하나의 개체로서 오늘 이 시대의 우리 인간은 세상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믿고 사랑했던 스승을 잃어버린 제자들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불안이 평안으로 바뀐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슬픔과 불안이 기쁨과 평안으로 바뀐 것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서 가능했습니다.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로서, 인간이 아닌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를 만남으로서 제자들은 슬픔을 극복했습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십자가 사건을 겪은 제자들은 비통한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참담한 심정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 의지할 사람이 없고 장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던 제자들의 슬픔과 불안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문들이 잠겨 있는 그곳에 홀연히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강을 준다.”고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심으로 지금 제자들 앞에 서 있는 자가 사흘 전에 십자가에서 죽은 자 임을 확인시켜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슬픔과 불안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부활한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순간에 제자들을 짓누르고 있던 슬픔과 불안은 사라지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닙니다. 한번 해 보는 빈말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면, 곧 그대로 이루어지는 힘을 가진 말입니다. 죽은 나사로에게 ‘일어나라’고 하심으로 나사로가 살아났고 앉은뱅이에게 ‘걸어라’고 하심으로 앉은뱅이가 걷게 되었고 풍랑에게 ‘잠잠 하라’고 하심으로 풍랑이 잠잠하게 되는 힘을 가진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이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평강을 줍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사람에게는 “평강”이 임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릅니다. 이 평안은 주님 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누리신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세상을 이기는 평안이며, 죽음을 이기는 평안입니다. 
  세상도 평안이라는 것을 압니다. 춥고 바람 부는 밤거리에서 갈 곳이 없던 사람이 따뜻한 방안으로 들어섰을 때에 누리는 평안, 여러 날 굶어서 배가고픈 사람이 먹을 것을 얻었을 때에 누리는 평안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평안은 강한 불안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자기가 누리는 평안이 잠시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다시 눈보라치는 밤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것과 또 다시 배가고파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항상 이런 것입니다. 잠시뿐이며 불안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언제 또다시 슬픔이 닥쳐올지, 언제 원하지 않는 일이 생겨날지, 언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지,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는 상태에 처한 인간에게 참된 평안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즐겁고 기쁜 순간에도 죽음이라고 하는 괴물이 검은 그림자를 내비치며 숨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평안이란 없습니다. 끝없는 불안이 평안이라는 가면을 쓰고 잠시 우리를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가면을 벗기면 슬픔과 불안은 곧 그 정체를 나타내고 우리를 삼켜버립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은 속임수의 평안이 아닙니다. 이 평안은 슬픔을 이기고 불안과 공포를 이긴 참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자의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주님이 누리신 평안입니다. 
  세상이 실패로 여기는 자리, 극심한 고통과 고난의 자리, 죽음보다 더한 고독의 자리, 수치와 치욕이 절정에 이른 자리, 그 십자가의 자리에서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신 주님의 평안입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지신 평안, 평강의 왕이 지니신 그 평안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사람에게 주님의 평안이 임합니다. 환난 중에도 슬픔 중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붙잡고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강이 슬픔을 당한 모든 사람들 위에 임하기를 원합니다.                                          
                                                                4/27/14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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