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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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708 date : 2014-09-22 05:18:53
NAME :    mkumc
SUBJECT :    용서해야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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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야하는 사람들”  마태복음 18: 21-35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용서해야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자신을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지고 주인의 용서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주인에게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1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돈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 용서하는 일일 것입니다. 용서를 하는 것은 죽여야 할 상대방 대신에 내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이고 싶을 만큼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내게 죄지은 상대방의 죄를 잊어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는 상대방을 살리는 일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살리는 일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원한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인생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분노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인간관계나 매사를 그르치기 십상입니다. 용서함으로 인간은 과거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용서를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마음에 걸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로 앞에 나오는 말씀, 지난주일에 제가 설교한 말씀입니다. 죄지은 자가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용서하지 말아야 할 경우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12:31-33에서 사람이 지은 모든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신 말씀과 통하는 말씀입니다. 교회를 훼방하는 죄는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나는 오래 동안 이 두 가지 서로 상반된 말씀을 가지고 고민했습니다. 왜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라고 하시면서 어떤 경우는 용서하지 말라고 하시고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하신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고민했습니다. 
  특히 2001년 9.11 사태를 겪은 후에 그러했습니다. 인간은 용서함으로서만 살 수 있는데 미국은 9.11 사태를 저지른 테러범들을 용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이론을 근거로 당시에 나는 신문에 글을 쓴 적도 있습니다. 참으로 순진하고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천안함을 폭침한 북한정권을 한국인들은 용서해야 하는가? 지금도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 종북 세력과 반 대한민국 세력을 용서하고 그들의 활동을 허용해야 하는 것인가? 
  일전에 한국을 다녀간 프란시스코 교황도 비슷한 말을 하고 갔습니다. “용서하라”고 말입니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정치사회 문제에 개입하면서 내세우는 주장도 “용서해야한다”는 말입니다. 나는 한 때 이명박 대통령의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면서 저분이 교회의 장로여서 “용서해야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나는 이 주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용서를 한다고 했을 때 그 주체는 용서하는 사람 자신이고, 용서를 받는 대상은 용서하는 사람에게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용서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대상을 용서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고 무책임한 일입니다. 프란시스코 교황이 한국인들에게 무작정 용서하라고 하는 말을 하고 간 것은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무모한 말입니다. 그는 한국인들이 겪을 혼란이나 고통을 함께 겪을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테러리스트들의 범죄를 용서하는 것은 테러범들에게 피해를 입은, 또한 앞으로 입을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기 하나만 살아남겠다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위입니다. 대통령이란 국가를 지키고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 달라는 위탁과 함께 그 국가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공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이 교회를 해치는 일을 할 때에 용서하지 말고 이방인과 세리처럼 내치라고 하신 말씀도 같은 이치입니다.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교회를 훼방하는 악한 세력과 싸움을 해야 하는 책임이 목사들에게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낳은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손양원 목사님이 위대한 것은 자기 아들을 죽인 공산당 청년을 양자로 삼음으로서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 목사님이 공산주의자들을 용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만약 공산주의자들을 용서했더라면 공산당의 손에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손 목사님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한계와 책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실한 신앙인이었고 참된 예수의 제자였습니다.   

  용서를 해야 한다는 말은 각자의 책임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이 괴로움과 아픔, 고난을 대신 감당할 수 있을 때에 용서한다는 말이 가능합니다. 
  자기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일에 관여하는 것 역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너무 쉽게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요. 누구나 자기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맡겨만 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이라는 말을 이해조차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각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결산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누구도 대신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기신 책임이 있습니다. 목사나 신부에게는 각자 맡은 바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진실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정치가나 국가 관리들에게는 국가를 지키고 국민의 복리를 위해 용감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올바르게 기르고 가르치기 위해서 자녀의 모범이 되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이 책임감을 지닌 시민으로서 바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든 종업원으로 일하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에 성실하지 못한 것이 타락이고 부패한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맡은 바 책임의 분량이 다를 뿐 누구나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지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모두 “너에게 주어진 책임을 어떻게 수행했느냐?”고 질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그 날에 “착하고 충성된 종” 이라는 칭찬을 받는 여러분과 내가 되기를 원합니다. 
                                                        9/21/14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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