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한인 연합감리교회 설교 모음



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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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692 date : 2014-11-16 01:29:51
NAME :    mkumc
SUBJECT :    형제를 사랑하라
HOME :    http://www.mkumc.org

“형제를 사랑하라” 요한1서 3:14-18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 앞에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율법사에게 예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고 대답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할 것을 명하며 구체적으로 말하기를 “누가 이 세상의 제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라는 이 명령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십니까? 얼마나 진실하게 순종하십니까? 이 말씀을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는 말로 받아들이십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것이 몸에 익은 습관처럼 되어 있어서 아무리 말해도 ‘너는 떠들어라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강퍅하게  굳어있으십니까? 마치 장터에서 ‘내가 피리를 불어도 너는 춤을 추지 않는다.’고 서로에게 불평하며 싸우는 아이들과 같으십니까?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옥토와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형제를 사랑하라”는 이 명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에 여러분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명령을 비껴가기 위해서 묻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냐? 무엇을 하라는 말이냐?”고.
  그러나 이런 질문은 사랑하라는 명령을 피하려는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요구하는 사랑은 사랑하기 위해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을 필요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네 자신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모를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이론과 체계 없이도 알 수 있습니다. 갓난아기도 자기 사랑을 압니다. 갓난아기도 자기만족을 알고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압니다. 
  흔히들 이웃사랑을 위해서 자기 사랑을 전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의미한 말입니다. 자기 사랑이란 애써 배워야할 어떤 것이 아니라 극복되어야할 자연인의 본능으로서 전제되어 있습니다.
  “네 자신과 같이” 라는 말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자기 사랑의 은신처를 침입합니다. 이 말은 자기사랑의 지극히 가벼운 변명도 남기지 않고, 지극히 작은 돌파구도 열어주지 않습니다. “네 자신과 같이”라는 말은 인간의 자기사랑을 확고하고, 피할 수 없게 움켜잡습니다. 
 
  끝으로, 이 사랑은 인간의 정신생활을 생기 있게 혹은 부드럽게 만드는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특정한 자세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웃과 원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하기 위해서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그 명령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특별히 강한 어떤 정열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잘하는 자에게 잘하는 것은 자연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의 태도입니다. 정열에 근거를 둔 사랑은 자기사랑에 불과합니다. 그런 사랑은 자기의 기호와 선택에서 오는 사랑이고 그 기호와 선택의 척도는 가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남녀의 우정이나 사랑은 자연적인 것으로 그 자체로서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의지가 문제일 뿐입니다. 
  사랑하라는 명령은, 사랑하라는 말이 계명인 것은 사랑이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자세를 뜻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참된 이웃 사랑은 이웃을 유약하게 만들거나 나약하게 만들지 않고 그도 역시 결단에 직면해 있는 자로 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간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단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 결단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는 식이 아니며, 신실하고 곧고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순종이냐 불순종이냐의 양자택일 앞에 서 있으며 인간은 그의 결단에서 의인이 되든가 아니면 죄인이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에게 저 사랑의 요구가 가능하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존재입니까?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에게 어떻게 사랑의 요구가 가능합니까? 인간이 죄인이라면 어떻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기에 요한 사도는 말합니다(4:7-1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가 형제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은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구원받은 자의 삶의 내용입니다.
  성령이 항상 이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십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성령으로 충만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것은 황홀경에 빠지거나 어떤 흥분 상태나 자아도취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는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이 충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희생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사랑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과 내가 되기를 원합니다.         
                                                               11/9/14  한영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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