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소서!” 시편123편
시인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고 있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에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과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떨면서 상전의 명령을 수행하는 종과 같습니다. 주인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며 온 정성을 다하여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종처럼 간절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것처럼, 아무리 못나고 악한 자식이라도 가엾게 여길 수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조소와 멸시를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웃음꺼리가 되어 있는 현실을 견딜 수 없다고 부르짖습니다.
오늘은 미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이 기쁜 날에 참담하고 황망한 이 시인의 심정이 자기 자신의 심정이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미국인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중에 맏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을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그러할 것입니다. 미국의 헌법 재판소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사실 때문입니다. 국가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할 때까지 교회는 무엇을 했느냐는 자책과 탄식으로 우울하기도 할 것이고, 제멋대로 하고 싶은 짓을 다하며 사는 세상을 위해서 교회가 괴로워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며, 국가가 무슨 결정을 하든지 그에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겠다고 결의를 굳히는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국가는 이 문제에 대하여 결론을 내렸지만 여전히 교회는 혼란과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여전히 동성 결혼 문제는 교회를 분열시킬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 연합감리교회는 2016년에 있을 전국총회에서 이 문제로 여전히 진통을 겪을 것입니다. 극단적인 사람들은 교단을 분열시켜서라도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길을 가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현실 앞에서 오늘 시인의 기도가 나 자신의 기도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이 땅의 교회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라고.
이 시대에 세계를 lead 하는 최 강대국이라는 미국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새로운 연대(era)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헌법 재판소의 결정은 결혼의 개념을 다시 정립해보는 계기를 마련한 것입니다. 결혼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한 남자(여자)가 여러 명의 여자(남자)와 사는 것이나 여러 명의 남자와 여러 명의 여자가 함께 사는 것을 결혼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polygamy가 더 오래된 결혼의 형태가 아닙니까?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반드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결혼이 가능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문제를 제기할 사람도 언젠가 나올 것입니다. 사람과 기계(로봇)의 결혼을 요구하는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며, 구약 성경에 ‘짐승과 교접하는 사람은 죽이라’는 명령이 있는 것을 보면 이 또한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래 공상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짐승을 함께 닮은 괴물들의 출현이 현실이 되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오늘날 현실이 된 동성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저항하는 사람들은 순교를 각오하는 심정으로 이에 맞서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혼인 증명서를 발급하는 임무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는 직장을 잃어버릴 각오를 하면서까지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이 계속된다면 미국도 “혼인 증명제”를 버리고 한국처럼 “혼인 신고제”를 채택해야 될 것입니다. 본인들이 작성한 서류를 제출함으로써 결혼이 인정을 받는 제도를 채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미국사회가 인간관계의 신뢰나 책임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사회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현행 제도에서는 혼인증명서를 발급하는 공무원이나 목사가 그 결혼에 대해 신뢰할 수 있도록 책임을 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문제를 야기하면서도 국가가 동성결혼을 인정한 것은 동성애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겠다는 인간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라 함은 아무리 법이 인정해주어도 그들이 겪는 고통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법으로 인정을 해준다는 사실은 이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또 다시 채찍을 들어 치지는 않겠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에게 돌을 들어 치는 대신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마음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법이나 윤리도덕의 규범이 어떠하든지 인간이 감당해야할 실존적인 문제는 그 사람 자신의 몫으로 남습니다.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결혼을 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자신이 행복한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 인간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만 해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 피조물인 인간에게 진정한 평화와 안식은 없습니다. 세상이 온통 괴물로 득실거리고 우리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이 닥친다 해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우리에게는 염려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르게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화가 있습니다. 주여, 세상의 멸시와 조롱에 고통당하는 주의 백성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주여, 이 땅의 교회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이 나라를 굽어 살피소서!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7/5/15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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