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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ropolitan Koryo United Methodist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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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 906 date : 2015-08-16 00:1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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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되라” 에베소서 4:1-12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모두 다 같이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가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을 비롯한 사도들의 서신은 곳곳에서 “교회는 하나가 되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 17장에서 십자가를 앞 둔 예수께서 교회가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신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에서 예수께서는 자기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애와 교훈을 수록하고 있는 공관 복음서조차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뜻하는 바가 그렇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이며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란 교회를 분열시키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취해야할 신앙인의 자세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교회는 “겸손과 온유함으로 행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일치단결해야 한다.” 는 말은 비단 교회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조직체는 그 조직체를 지키기 위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민주 국가는 국가를 운영하는 일에 하나가 되자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여당이 있고 야당이 있어서 서로를 견제함으로 국민을 위해 더 낳은 정책을 펼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가 설 수 없다는” 이치는 진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국가라는 조직체를 유지하고 지키는 일을 위해서는 여당과 야당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야당이라고 해서 국가를 해롭게 하고 적을 이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국민으로 인정해서는 국가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경쟁을 전제로 해서 세워져 있는 사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치열한 경쟁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에서도 서로 경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경쟁은 기업체의 존립과 성장을 위한 선의의 경쟁이어야 합니다. 내부를 분열시키고 적을 이롭게 하는 경쟁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미국에 와서 신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듬해인 1980년 여름 방학에 East Harlem에 있는 한인 컴뮤니티를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살고 있는 한인은 거의 없었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지역의 병원에서 일하던 소수의 한인들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교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 역시 그 지역에서 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East Harlem에 한인들이 운영하는 사업체는 많이 있지만 East Harlem에 한인 컴뮤니티는 없다는 것이 제 결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30년이 지난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한인이 운영하는 그 많던 가게들마저 사라지고 소수가 남았을 뿐입니다. 당시에 내가 만난 한인들은 서로 도와주고 힘이 되는 컴뮤니티를 만드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함께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임을 가지고 정보도 교환하며 서로를 도와주는 일을 하면 좋지 않겠냐?”는 말을 하고 다니는 나에게 저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있습니다. “내 가게 바로 옆에 나와 같은 업종의 가게를 차린 저 사람이 내 가게와 가격 경쟁을 함으로 내 가게가 망할 지경이 되었으니 이런 일을 막아낼 재주가 있으면 한 번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업체는 본래 경쟁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업체가 경쟁함으로 소비자가 좋은 물건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체가 경쟁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또한 새로운 업체가 등장함으로 지금까지 자기가 누리던 호황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토록 당연한 이치를 인식하고 그 이치를 현실에 적용하면서 함께 사는 법을 배울 생각은 하지 않고 한인끼리 피 흘리며 경쟁하고 미워하고 원망함으로 한인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나를 괴롭힙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는 지역에 한인이 가게를 열면 유대인들이 긴장해서 모여 대책회의를 하고 야단법석을 한답니다. 그러다가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하나 더 생기면 걱정꺼리가 사라졌다고 좋아한답니다. 한인끼리 경쟁해서 결국은 서로 망하게 될 것이니까요. 다양한 인종이 모여서 살고 있는 미국에서 소수인종에 불과한 한인들이 컴뮤니티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극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는 우리의 후손들 역시 이민 1세처럼 또 다시 개척자로 살아야 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한인들의 힘은 점점 약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민 2세에게는 한인이라는 정체성조차 미약한데 저들이 어려울 때 손을 벌릴 한인 컴뮤니티조차 없고 도움이 되어 주는 어른들도 없기 때문에 저들은 한인사회와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이 땅에서 대접받고 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미국에서 한인들은 “흑인들보다 더 천하게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박창해 장로님(전 연세대학교 교수)의 말씀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현실이 되는 듯합니다. 우리 교단 안에 있는 한인 교회와 한인 목회자들의 현실이 이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민사회 현실 때문인지 요즘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이민자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유학생을 위한 교회를 따로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모입니다. 아마도 부유한 한국 사회에서 유학까지 온 특권층이라는 의식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상류사회에 속한 사람들끼리 사귀겠다는 것인지 그 의도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가지고 세계 속의 한민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강대국에 둘러 싸여서 분단된 체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존립과 번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 시대의 한국인들, 특히 세상의 맏아들로 세상을 구원할 사명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과 온유로 행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서” 세상이 나아가야할 길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원합니다.
8/9/15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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