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가 되어라” 마가복음 9:33-37
며칠 전 우리 교회 옆집의 건물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에게 몇 시까지 일을 하는 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마디도 영어를 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한문으로 된 그의 전화기를 통해서 한 마디 의사소통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이 도시가 참 좋은 곳이며 통역 기능을 갖춘 전화기를 지니고 살 수 있는 이 시대가 참 좋은 시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시대에 넓고 큰 도시에서 살아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섬기며 산다는 의식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평화롭지도 자유롭지도 못할 것입니다. 뉴욕에서 중국인들이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서로 형제처럼 여기며 감싸주고 돌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정치나 권력에 기대려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협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섬김이란 상하 관계의 개념이 아니라 수평 개념일지도 모릅니다. 그에 비하여 주종 관계로 사는 일에 익숙해 있지만 일제시대 와 전쟁을 겪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온 우리 한국인들에게 섬김이란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근세조선의 오랜 전통 때문에 섬김을 상하관계로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섬기는 사람은 낮은 사람이고 섬김을 받는 사람은 높은 사람이라는 의식이 우리의 무의식에 배어 있다는 말입니다. 섬김을 상하관계로 이해하는 현상은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의 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우리 중에서 누가 크냐?” 다시 말하면 “누가 높은 사람이고 누가 대접을 받고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이냐?” 는 문제로 제자들은 서로 논쟁을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니까, 요한은 스승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으니까, 가룟 유다는 돈 주머니를 맡고 있으니까” 등의 이유로 각자 자기가 더 높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제자들이 높고 낮음을 가려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친교를 위해서 누가 밥을 지을 것인지, 식사가 끝난 후에 설거지는 누가 할 것인지, 예배 처소를 청소하는 일은 누가 할 것인지, 벽의 페인트는 누가 칠할 것인지, 지붕 수리는 누가 할 것인지, 돈은 누가 낼 것인지 하는 일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섬김이 필요합니다. 가정이나 교회, 국가가 모두 그러합니다. 누군가의 섬김이 없이는,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국가를 지키고 모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섬기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섬기는 자가 높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끝이 되며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많이 섬기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사람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비천하고 낮은 자리인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가장 높고 귀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섬기는 사람이 높은 사람이 되는 곳입니다.
대접을 받기만 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라는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철부지 어린아이는 목소리가 큽니다. 시도 때도 없이 큰 소리로 울 수 있는 것은 그가 철부지 어린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철부지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아이를 돌보아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부지의 울음소리에 공동체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섬김은 없이 목소리만 큰 사람이 공동체를 주장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기 주머니를 털지 않으면서 불평불만만 많은 사람들은 철부지와 같습니다. 우리 한인 공동체는 어느 곳이나 이런 철부지들로 넘쳐납니다. 가는 곳마다 말만 많은 사람들이 섬기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가십거리로 삼아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쥐락펴락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사람을 도와주려는 의도가 있을 때여야만 합니다. 도와 줄 마음도 없고 도와 줄 능력도 없으면서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야 말로 철부지들의 철딱서니 없는 짓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을 섬길 줄 아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갓난아기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한인 그리스도인들이 한인 공동체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섬기는 자가 높은 자라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9/20/15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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