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화목 하라” 마가복음 9:38-50
한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을 평가한다면 두 종류의 사람들로 분류가 될 것입니다. 한 부류는 그에게 물 한잔이라도 주어서 도움이 되는 사람들일 것이고 다른 한 부류는 말 한마디라도 악하게 해서 그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예수 그리스도 와 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박해의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현상도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일생 동안 항상 일어나는 일이며 여러분과 내가 평생 겪으며 사는 현상입니다. 또한 도움을 주고 위로를 주고 힘을 주는 사람이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가족이나 친척보다 가까이 살고 있는 이웃이 더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가족은 가족이기 때문에,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이기 때문에, 형제이기 때문에, 욕심이 앞서고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어서 순수하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모와 자식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는 창립당시부터 추석 명절을 지켜왔습니다. 추석은 우리 민족이 지켜온 명절 중에 가장 큰 명절입니다. 추석은 먹을 것이 풍부한 추수의 계절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명절은 온 가족이 모인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모임을 통하여, 특히 농경 사회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섭섭한 것이 있으면 풀고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서 가족 공동체를 공고하게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제사를 지냄으로서 세상을 떠나서 그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가족과 함께 하려는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죽은 자와 함께 한다는 것은 죽은 자가 귀신의 형태로 그 자리를 찾아온다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이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미신입니다. 이런 미개한 생각에서 제사의 의미가 조상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우상숭배로 변질 되었고 조상신에게 복을 달라고 비는 제의가 되었을 것입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유교가 조상신의 존재를 인정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사의 본래 의미는 조상을 기억하고 조상에게 지은 죄를 뉘우치고 반성함으로 보다 나은 후손이 되려는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사상 앞에 둘러앉는 사람들은 죽은 자를 기억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죄인과 죄인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식 앞에서 평생 죄인이고 자식은 부모 앞에서 영원히 죄인입니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생각할 때 못해준 것들과 상처준 것들만 기억하며 마음 아파하는 죄인입니다. 자식은 일생 동안 부모에게 걱정꺼리이다가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부모를 원망하고 섭섭하게 여겼던 사실을 후회하며 괴로워하는 죄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두고 마음 아픈 것이나 자식이 부모를 기억하며 괴로워하는 것은 모두 죄인이 겪는 고통입니다. 죄인이 겪는 고통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자기를 죄인이 되게 만드는 손이나 발, 눈을 빼어 버리는 고통이 죄의 값을 치르는 고통보다 낫습니다. 죄인이 치러야 할 고통은 그만큼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마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떨어진 것처럼 쓰라리고 고통스럽습니다.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잠시 살다가는 우리 인생이 이런 고통 속에서 허덕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 되어서 죄의 값을 치르며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더욱이 우리가 받을 고통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대신할 희생의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이 복음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 없다고 인정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용서받은 자로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를 용서받은 자로 살게 합니다. 이 은혜,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은 우리는 서로 화목할 수 있습니다. 이웃과 형제, 부모와 자식이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찾아가서 용서를 구할 수도 없는 사람들과도 화목할 수 있습니다. 비록 누군가가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하고 섭섭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용서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너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우리는 서로를 용서할 수 있고 화목할 수 있습니다. 용서받은 자의 기쁨으로 용서하는 자의 자유로움으로 서로를 섬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9/27/15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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