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 부활절 공개 성서강좌(5/24,화 오후 7시30분/2016) “바울의 신학에서 본 동성애문제” (성경인용은 개역한글판입니다.) 한 영 숙 목사
1. 본 강좌의 범위와 목적 본인은 이 강의에서 생물학이나 사회학의 입장에서 동성애 문제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본인에게는 그러한 문제를 다룰 만한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동성결혼과 동성애 차별금지를 합법화한 상태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교회가 국가에 맞서 싸움을 하려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한 싸움은 성공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을 위축시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지켜야 할 교회의 본질을 찾아야 하고 이 시대의 참 된 교회로서의 길을 가기 위하여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 즉 신학을 정립해야 합니다. 이에 기독교신학의 초석을 놓은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검토해보기로 합니다.
2. 범죄로서의 동성애 1) 바울은 그의 서신 곳곳에서 동성애를 그리스도인들이 삼가야할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집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전3:16)고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전5:11)고 하며, 심지어 “이 악한 사람들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5:13)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명령이 교회 밖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고전5:9-12)고 하여 이 명령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것임을 밝힙니다. 바울은 구체적으로 동성애와 그에 따른 고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1:26-27)고 하여 동성애를 범죄의 하나로 규정하고 그 대가로 주어진 고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동성애는 그리스도인이 피해야 할 유일한 범죄가 아니라 여러 유형의 범죄들 중에 하나입니다. 바울은 각종 범죄, 즉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함,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함, 수군수군하는 것, 비방하는 것,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것, 능욕하는 것, 교만한 것, 자랑하는 것, 악을 도모하는 것, 부모를 거역하는 것, 우매함, 배약하는 것, 무정한 것, 무자비한 것이며,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일을 행하는 사람을 옳다고 하는 것”(롬1:29-32)이 모두 하나의 죄에 대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범죄의 근원이 되는 죄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를 떠난 상태입니다. 인간이 온갖 악행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으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시어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롬1:24-25). 바울은 동성애를 비롯한 인간의 모든 악행들을 죄라고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상실한 인간, 즉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며 사는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형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는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며 죄인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 된 사람입니다. 바울에 의하면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죄인들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9-12)고 단언합니다. 마침내 바울은 “믿음으로 쫓아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롬14:23)라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3. 죄의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1) 이렇게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간은 그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 완전해질 수 없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의 역할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롬3:20). 인간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하여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갈2:16)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롬3:21-24). 2)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후3:17)고 바울은 힘차게 외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지금까지 그가 속해 있던 죄, 즉 율법에서 죽고, 은혜,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에게 그 자신의 지나간 모든 것(과거와 현재의 상태)을 버릴 것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할 수 있으면 과거를 버리는 것이 좋고 현재의 상태를 바꿀 수 있으면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만) 그리스도인은 지금 있는 그대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새로운 피조물임을 자각해야 합니다.”(롬6:11). 바울은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 할례 자가 되지 말며 무 할례 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고전7:17-20)고 권고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변화하는 것 역시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난 새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힘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이 믿는 자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 갑니다.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변화된 자신에 대하여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4:11-13))고 고백합니다.
3) 이와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새 사람에게는 자유가 주어집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고후3:17).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 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 진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전7:29-3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이 자유는 그가 이제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자각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19-20)는 신앙고백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싹트고 자라납니다. 4. 자유인 1) 자유인의 책임 믿음으로 자유를 얻은 사람은 그 자유를 남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은 자유인에게는 책임이 주어집니다. 바울은 그의 자유가 남의 양심에 거리낌이 되지 않도록(고전10:29)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권고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고전10:33).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전6:12)고 하여 자유인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4장과 고린도전서 8장에서 자유인의 책임에 관한 문제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중요한 이슈였던 우상의 제물 문제에 대하여 “너희 자유 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9)고 명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자유가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고전8:9) 하기 위하여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겠다.”(고전 8:13)고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유인이지만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종으로서 자유인입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얻을 수 있도록 스스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되었다고 고백합니다(고전9:19-23). 그럼에도 바울은 늘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그는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하며 스스로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쳐서 복종했다.”(고전9:27)고 고백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직자가 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물어야 하는 근본적인 질문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자유인이라는 확신이 그에게 있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이 얻은 자유까지 희생할 각오가 있는지?”입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이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그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그의 미래를 맡겨야 합니다.
2) 겸손한 자유인 믿음으로 자유를 얻은 사람은 그 자유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 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롬14:1-3) 고 말합니다. 교회 안에는 언제나 자유로운 자와 자유롭지 못한 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특히 새로 들어온 사람의 경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자유”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연히 많은 교인들이 율법과 온갖 법규에 얽매이게 됩니다. 이들은 율법에 자유로운 사람들을 비판하기 쉽고, 자유로운 사람들은 이들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기 쉽습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을 경계한 것입니다. 교회는 믿는 자들끼리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를 판단하는 일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롬14:4)고 단언합니다. 믿는 자를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하인(종)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습니다.”(롬14:7). 믿는 자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롬14:8). 모든 믿는 자는 각각 자기의 일을 하나님께 직접 고하여야 합니다(롬14:12).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자유를 얻은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다시 태어난 체험이 인간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죽은 자가 부활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은 아무것도 주장할 수가 없어집니다. 지금까지의 자기 자랑이나 판단, 가치기준, 확신 같은 것이 모두 무의미해졌기 때문입니다. 겸손함이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그리스도인의 모범으로 제시합니다(참고; 빌2:5-8). 따라서 교회는 끝까지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용납할 수 있고 화해할 수 있고 언제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롬15:7). 그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상과 구별된 ‘땅에 있는 하늘나라’라고 부릅니다.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이(교회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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