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2-17
지난 월요일 저녁에 오늘 설교할 본문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과연 이 시대에 이 본문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사회에서 성경을 읽고 성경의 영향을 받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시대착오가 아닐까, 대선 후보들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교회는 사람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말에 얽매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본문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일어난 최순실 사건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의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주변 환경이나 직위의 고하가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자기 자신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 있어도 인간으로서의 실존적 문제는 자신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니 인간으로서의 고독과 고뇌는 오히려 더 커지게 됩니다. 자연인으로 있을 때, 특히 가진 것이 없고 줄 것이 없을 때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순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 누구와도 순수한 관계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박 대통령이나 그 주변의 사람들이 특별히 악하거나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과거 한국의 대통령들이 모두 불행했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대통령 자신은 원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이나 친척, 가까운 사람들이 비리에 연류 되어 감옥에 갔고 심지어 자살한 대통령까지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과연 한국인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체제를 지켜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의심이 듭니다. 무서운 독재체제가 오히려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닐까하는 냉소적인 생각까지 듭니다. 그 이유는 대통령이 되었거나 되겠다는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태도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은 이념이나 사상, 철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씨가 김종필, 정몽준 씨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한국인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어떤 것이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있는지를 먼저 계산합니다. 뿐만 아니라 똑 같은 일도 남이 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비웃고 쳐다만 보다가 자기가 그 일을 하게 되어야 열심을 냅니다. 어쩌면 조선 500년 동안 몸에 밴 노예근성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의식이 없는 사람들, 대가가 없이는 일하는 맛을 모르는 사람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사람들, 남이 잘되는 꼴을 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어도 여당이 인정받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방해를 하는 것이 야당입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라의 주인이라면 나라 살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주머니만 챙기려 할 수는 없을 텐데, 한 푼이라도 보상금을 더 받아내겠다고 떼를 쓰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대한민국이 아닙니까? 대가가 없거나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고 그 일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내가 하현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미쳤다는 말을 들을 만큼 그에게는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있어서입니다. 일이란 본래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끝이 없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농노의 비유처럼 새벽부터 밤까지 쉴 수없이 일을 하고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라는 고백을 해야 하는 것이 일에 대한 온전한 태도입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이러한 태도가 부족합니다.
이러한 한국인들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가만히 내버려 두겠습니까?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권력을 자신의 것처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그들이 가족일 수도 있고 친척이나 친지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이들을 부러워하고 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아부를 합니다. 당연히 이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중상 모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권력을 가진 사람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한국인들의 모습입니다. 게다가 어떤 일이 터지면 자기가 하는 말이 미칠 영향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해대는 언론이 있습니다. 언론은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직한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인기를 얻기 위해서 소설쓰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언론인들은 대중매체라는 무서운 병기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들기도 하고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직면하고 살아내야 하는 세상 어디에서나 언제든지 있어 왔습니다. 이와 같은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어디서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서 성경이 주는 능력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기원 전 천 년부터 기원 후 백여 년 사이에 씌워진 책입니다. 아주 오래된 옛날 책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 배경이나 시대가 아주 다양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같은 것은 알지도 못했고 황제나 왕이 존재했고 절대 권력을 가진 종교지도자들이 있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을 통해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말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성경이 당장 내가 필요로 하는 상황에 간단하고 직접적인 대답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잘못 읽을 수도 있고 내용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방법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국어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선 성경을 통독해야 합니다. 성경을 취사선택할 것이 아니라 전체를 읽어야 합니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계속해서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의 모든 말을 자기 자신에게 주어지는 말로 여기고 그 말대로 살겠다는 각오로 읽으면 됩니다. 그 말대로 살려고 하면 그 말이 가진 의미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 말대로 살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그렇게 살 수 없다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게 되고 겸손한 사람이 될 것이며,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된다면 자기 자신이 변하고 있으며 악한 세상을 이길 능력이 자기 안에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인들이, 한국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들이 될 때에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비극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10/30/16 한영숙 목사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