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주셨으니" (갈라디아서 5장 1절)
오늘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입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과 영토, 그리고 주권입니다. 주권은 나라의 법(헌법)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과 영토와 법으로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온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로서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국가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자유'를 건국 이념으로 해서 세워진 나라로 세계사에 유례가 없다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자유도 제한적입니다. 인디언들이나 흑인 노예들에게는 오래 동안 자유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말하는 자유는 항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모든 종류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헌법이 명시를 하고 있지만 실재로 인간이 자유를 누리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타고난 성격이나 재능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똑똑하고 활달해도 백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폭과 흑인이나 한국인의 그것이 다릅니다. 인종에 따른 차이만이 아니라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따른 차이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기 원해서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있어도 나이가 많거나 건강이 좋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외적인 여건에 의해서 자신의 자유가 제한을 받는다고 쉽게 불평하지만 사실은 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조차 제대로 누리지를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여건 아래에서도 얼마만큼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각자 자신의 몫입니다. 사회적 전통이나 규범, 윤리나 도덕 같은 것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기보다는 인간을 속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적인 자유를 말한다면 법이 허용하는 자유가 최선의 것입니다. 인간 사회의 기초가 되는 규범은 법이고, 마지막 가면 법을 문제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연히 법이 그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마치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자유가 없고, 사는 것을 답답해서 견딜 수 없어 하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릴 정도로 주어진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얻어야 할 참 자유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외부적인 여건이 아무리 나빠도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고, 발이 쇠고랑에 채인 노예의 신분으로 힘든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의 마음은 한없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꼼짝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도 있고, 눈앞에 죽음을 두고 있으면서도 죽음을 넘어선 자유로움으로 평화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자유는 어떤 것이며, 진정한 자유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진정한 자유는 보이는 것, 이용될 수 있는 것, 자신이 지배할 수 있는 것, 무상한 것, 지나갈 것, 손에 잡히는 것에 구속당하지 않고, 다가오는 참 미래를 향해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가지고 솔직히 서는 것입니다. 자유는 미래에 의해 현재의 자기가 규정되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붙잡거나, 그것에 미련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내가 알지 못하는 미래에, 영원한 미래에 나를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아직 오지도 않은 그 미래가 지금의 나를 규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게 자기를 맡긴다는 말이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미래를 향해 솔직하게 서는 것은 하나님에게 자신을 맡긴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믿고,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길 때에 우리 인간은 자유를 얻습니다. 주어진 여건이 어떠하든지, 자기가 지금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 우리를 자유 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기를 원합니다. 7/4/10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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