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 창세기 1:1-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는 본문의 말씀을 진화론과 대립되는 명제로 보고, 기독교 신앙이 과학에 대치된다고 주장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가지고 현대 과학과 논쟁을 벌이는 일은 무의미하고 무모한 일입니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적인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선 본문의 내용 자체가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과학적 진리를 주장하려는 것이라면 그 기록이 자체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했는데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고 함으로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땅이 이미 있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본문은 불명확한 진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창세기의 진술이 과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기록은 우주의 근원에 대한 관심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본문이 3천 년 이상 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우주관에 근거를 둔 사상들이고, 그 시대 사람들의 우주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창세기의 관심은 실재하는 세상의 존재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가 하는 것(그 당시의 과학일수도 있음)과 동시에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인간의 실존에 관한 관심에서 온 것입니다. 성경의 이 진술은 과학적인 진술(scientific statement)이 아니라 신학적 진술입니다. 즉 세계와 자아에 대한 신앙고백의 진술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서술은 기독교의 창조사상(론)이 아니라 창조신앙이라고 해야 합니다. 본문을 창조 신앙의 서술이라고 했을 때 본문은 중요한 몇 가지 내용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1장 1절에서 사용된 “창조한다”는 동사는 (bara 라는 것으로)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동사입니다. 이 동사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하나는 “전혀 노력 없이”, 그리고 “무에서” 라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어떤 물질과도 관계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한 의지에 의해서, 하나님의 전능함에 의해서, 창조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은, 이 세상과 세상의 모든 것이, 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내가 속해 있는 나의 모든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근거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의지, 뜻, 때문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이는 과거의 근원을 캐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순간의 나와 내 세계, 이 세상의 근거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창조신앙은 2절이 말하고 있는 이 세상의 혼돈과 공허를 전제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는 표현은 세상의 모든 것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해일을 만난 깊은 바다가 요동을 치는 상태와 같은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가 있습니다. 혹은 캄캄하고 깊은, 끝도 없이 깊은 동굴이랄까, 수렁이랄까, 하는 속에 빠져서, 분간할 수도 없는 이상한 소리와 형체들이 뒤범벅이 된 속에 내가 혼자 서 있는 상태를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러한 상태의 세상의 혼란과 무질서함 위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그 세상을 흔들어 놓고 있는, 진동시키고 있는, 그런 모습이 2절의 묘사입니다. 창조신앙은 이러한 끝없는 무질서와 허망함 속에서, 인간이 도저히 그곳에서 살 수 없는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일하시기 시작하심으로, 세상은 질서를 찾고, 인간이 살 수 있고,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필요한 것들로 가득차고, 충만한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우주에서, 이 땅에서, 내 삶에서, 내 세계에서, 하나님이 사라지면, 지금까지 지켜졌던 질서는 혼돈과 무질서로, 충만함은 공허함으로, 빛은 어두움으로, 순식간에 변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런 혼란과 공허의 상태는 태초에 한 때 있었던 상태가 아니라, 오늘, 지금도, 언제 어디서나 인간에게 항상 가능한 상태입니다. 그것은 항상, 창조된 세계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심함으로 우리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밀어내어 버릴 때에, 와 지는 상태입니다. 창조신앙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끝으로 창조신앙은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말이 그러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말씀으로 지으셨다는 말이 그것을 가르칩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로 지으셨다는 것은 세상의 피조물이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아닐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은 그의 말씀 한 마디면 언제든지 존재하기도하고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5절이 명시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이름을 주셨다는 것 역시 피조물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말이나, 말씀으로 지으셨다는 것이나, 피조물에 이름을 주셨다는 말들이 모두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고백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어서, 혼돈과 공허 속으로 침몰해버리려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세계가, 하나님이 주인으로 계시는 창조된 세계로 변하고, 아름답고 충만한 세계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6/19/11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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