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 창세기 32: 22-31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서 얻은 재물과 가족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야곱이 점점 부강해지는 것을 질투하는 외삼촌 때문에 더 이상 그 곳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강 하나만 건너면 형, 에서가 살고 있는 땅이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야곱은 형을 만나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형은 강해져있었고, 정보에 의하면 4만 명이나 되는 사병을 이끌고 자기를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그때까지도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형의 노여움을 풀기 위하여 또 다시 잔꾀를 부립니다. 재물을 반으로 나누어서 일부는 먼저 보내고 나머지는 후에 보냅니다. 만약 먼저 보낸 것을 잃게 되더라도 나중 것은 도망을 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을 한 것입니다. 그리한 후에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를 돌보아 주셔서 이렇게 많은 재물과 식솔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을 감사한다는 말과 함께 형으로부터 자기를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를 마친 후에 야곱은 형, 에서에게 바칠 선물을 들려서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강가에 남습니다.
그 밤이 지나면 당면하게 될, 형과의 일전을 치를 것을 생각하며 고민하던 야곱이 다시 뜻하지 않았던 난관에 봉착합니다. 형보다 훨씬 더 무서운 적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존재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야곱을 공격해왔습니다. 야곱은 그가 인간이 아닌 신적 존재임을 곧 알아차렸습니다. 야곱은 그를 붙들고 자기를 축복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자기를 축복해 주기 전에는 결코 그 신비로운 존재를 놓아줄 수 없다고 밤새도록 붙들고 늘어집니다. 누구에게도 지지 아니하려는 그의 근성이 여기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야곱은 조상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형과 아버지를 속여 자기의 것으로 만든 후에, 하란으로 도망하던 중에 베델에서 꿈을 꾸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야곱이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이러한 욕구는 쉽게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요청은 쉽게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새벽이 되도록 자기를 축복해 주지 않는 상대방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새벽이 되어 그 신적 존재는 떠나가야 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야곱이 그를 놓아주지 않음으로 마침내 천사는 야곱의 환도뼈(좌골)를 쳐서 야곱을 쓰러뜨립니다. 환도뼈가 탈골되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기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야곱을 향해 천사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 고 물었습니다. 야곱(속이는 자)이라는 대답에 천사는 “네 이름을 이스라엘(승리자)이라 하라”고 말한 후에 야곱을 축복 해줍니다. 야곱은 다시 그를 향해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고 대답하며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 싸움에서 야곱은 승리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실상 야곱이 이 싸움에서 이겼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기는 했지만 그 대신에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는 평생 한 쪽 다리를 못쓰는 불구자가 되어야했고,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체로 자기의 이름을 밝힘으로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모두 들어내야 했으며, 상대방이 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즉 자기의 뜻과 상관없이 상대방이 원하는 새로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 싸움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철저하게 항복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뜻대로 재주를 부리며 살아온 야곱의 잔꾀가 하나님께는 전혀 통하지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형이나 아버지, 외삼촌을 비롯한 모든 인간들처럼 그렇게 속이고 이용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얻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 싸웠지만 결코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은 야곱의 힘으로 상대방을 꺾었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이 은혜를 베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야곱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은 후에 그냥 떠나버릴 수도 있었지만,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어 그를 축복해 주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가 당한 모든 고통과 모욕, 자존의 상실, 등은 곧 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을 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야곱의 위대함이며, 야곱을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이며, 승리자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전 역사를, 동이 틀 때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한 투쟁의 역사로 이해합니다. 이것은 신앙인의 자기 이해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듣기 위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이름을 밝히고,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채찍을 맞아도 피해 도망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까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때까지, 하나님의 옷자락을 놓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씨름의 경험을 통하여 신앙인은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는 잔재주를 부리고 사람들과 힘겨루기를 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고,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으며,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는 줄 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굴복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신앙인은 자신이 약할 그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되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육체에 가시가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세 번 주께 간구하였으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7-9)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때문에 바울은 크게 기뻐함으로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하기 때문이라 (고후12:10).” 고백했습니다. 약한 자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29)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자신의 아들로 선포하신 하나님이 야곱이 만난 하나님이고, 여러분과 나의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8/7/11 한영숙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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